펀치볼, 피로 지킨 자유의 땅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6-06 12:58

22사단의 혈전과 현충일에 되새기는 기다림


지난 현충일을 전후해 다부동·장전호·백마고지와 함께 한국전쟁 최대 참혹한 격전지 중 하나인 펀치볼(Punchbowl)과 화살고지를 방문했다. 360도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은 유엔군이 붙인 ‘화채대접’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평지에서 바라본 펀치볼은 6월의 푸른 녹음 속 아늑하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에 면한 을지전망대에 올라서자 그 실상이 드러났다. 아늑해 보이던 산들은 가파른 준령이었다. 그 능선을 오르내리며 적과 맞서던 전투의 참혹함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휴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단 하나의 고지라도 더 대한민국 영토로 지키기 위해 6개월 동안 2만여 명의 젊은 목숨을 바친 곳. 그 희생 위에 오늘 우리가 있다.

지난해 22사단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22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펀치볼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혈전을 벌인 부대다. 고지를 점령했다가 빼앗기고, 다시 빼앗아 오기를 반복한 치열한 전장이었다. 그곳에서 소대장으로 싸우시던 아버님은 중상을 입으셨다. 아버님의 부대는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용감히 싸운 부대였다.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연설 중에 아버님이 평소에 즐겨 부르시던 ‘비 내리는 고모령’이 생각나 목이 메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가면서
오늘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현인의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 부분>


그 노래 속 기다림은 오늘도 펀치볼의 바람 속에 살아 있는 듯하다.

이날 펀치볼에서는 ‘나라사랑 물망초 예술제’가 열렸다.

전 국립국악원 원장 한명희 선생이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물망오계(勿忘五戒)를 다짐했다.
6·25의 참상을 잊지 말자, 호국영령들의 은덕을 잊지 말자, 희생 가족들의 고통을 잊지 말자, 남북통일의 비원을 잊지 말자, 나라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



양구 땅의 아픔을 노래한 장승진 님의 시도 함께 새겼다.

‘산 첩첩 물 겹겹/양구 땅에 피는 꽃은 피보다 더 붉어/산비탈엔 사시사철 꽃새가 우네/일천구백오십일년 유월부터 십이월말까지/도솔산, 대우산, 백석산, 가칠봉/피의 능선에서 단장의 능선에서/펀치볼 분지에서 이름 모를 고지에서/죽거나 실종된 군인들만 이만팔천삼백여명/참혹했던 전투의 함성과 아우성이/넘쳐흐르던 피의 강이/지금도 바람 속에 흙 속에 묻혀/사정없이 꽃대를 밀어 올리네

지옥같던 포성 속 어머니 어머니/My Heart Breaks, Heart Breaks!/간절한 절규도 전설이 되고/아군도, 적군도, 유엔의 깃발 아래 바다를 건너 온/푸른 눈의 군인들도 하늘에 올라/비로 바람으로 때론 폭설로/그 날의 치열함 전할뿐이네

수호신들의 땅/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예사로 보진 말게/그리고 잊지 말게/오늘의 자유엔 피가 묻어있음을/평화의 미소 뒤엔 숭고한 희생의 눈물이 있었음을/신화가 태어난 땅 양구를 지날 때/피보다 더 붉은 꽃을 보거든/영혼이 피었다 생각하게나/바쁜 걸음 멈추고 잠시/고개 숙여 경의를 표해주게나.’


그리고 필자의 시 아. 그해 그날 6.25도 함께 나누었다.



아. 그해 그날 6.25
_최용대_



유월의 하늘빛은 기다림의 시작에서
유월의 하늘빛은 기다림의 완성일 듯

넝쿨 속 빨간 찔레꽃
네 진한 꽃잎이 피려고
내 가슴에 너 닮은 빨간 피멍이 들었나 보다

침묵빛 계절을 지나노나니
잠깐씩 빛나는 빨간 햇살의 눈웃음에게

그리움의 냄새를
기다림의 마음을 전하노라니

태극기 휘날리는
감격이 아니더라도

찔레꽃 붉은 정렬 빛 그 마음
유월이 지나기 전에 내게 품으리다.
 

책으로만 배운 역사는 지식에 지나지 않지만, 펀치볼의 땅을 직접 밟으니 삶과 죽음, 나라의 의미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펀치볼에 오키나와 평화공원 같은 전쟁기념관과 추모공원이 세워진다면, 특히 젊은 세대가 대한민국이 어떤 희생 위에 서 있는지 진정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없는 영령들 앞에서 우리는 다시 다짐한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자유를 지키며, 후손에게 온전한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보답이다.

6월,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펀치볼의 바람과 붉은 찔레꽃, 그리고 기다림을 기억하자.

                                                                                2026년 6월
                                                                                    _최용대




 



❝ 양구 펀치볼마을 (펀치볼) 소개


펀치볼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해발 400~500m 고지대에 형성된 분지로, 양구 북동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하며, 그 모습이 마치 화채그릇(Punch Bowl)을 닮아 ‘펀치볼’이라 불린다. 남북으로 길쭉하고 남쪽으로 좁아지는 특이한 지형은 운석 충돌설과 차별침식설이 있으나, 운석의 흔적이 없고 주변 암석의 차이에 따른 침식 작용으로 형성되었다는 차별침식설이 더 유력하다. 이 분지는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면(面) 단위 지역으로, 대암산을 중심으로 6·25 전쟁 당시 펀치볼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 치열한 전장이었고 지금도 곳곳에 전적비와 지뢰 경고 표지판이 남아 있다. 전쟁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열목어, 개느삼, 금강초롱, 해오라비난초 등 다양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발 1,300m 대암산 정상부의 ‘용늪’은 남한 유일의 고층습원으로 천연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분지 내에서는 고랭지채소와 감자, 백합이 재배되며, 북서쪽에는 제4땅굴과 금강산 비로봉을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가 있어 안보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방문 시 양구통일관에서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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