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목(碑木)
― 군번줄 없는 바람의 실종
이원희
곡비가
한바탕 울고 가버린
6월, 하늘의 변두리
구멍 난 철모에서 빠져나간 이름들은
어째서 귀환하지 못하는가
화염 속 호출을 기다리던
은빛 쇳조각의 희미한 주파수,
홀로 떨다 녹슬어 간 자리마다
살생부의 허기진 화약 냄새가 배어든
들꽃들은 실어증을 앓고
먹구름에 갇힌 이슬로 숨어든다
반역을 떠들던 시퍼런 입술은
젖먹이의 지아비마저 삼켜버렸다
아직 총알을 받아 내기엔 너무 어린 꽃들의 넋,
그 여린 구멍에서 새어 나온
마지막 포성 같은 한 소절이
저벅저벅 이명 속으로 걸어 들어와
맥박으로,
맥박으로 흘러들었다
청춘마저 방전시켰던 그날의 약속,
6월의 철조망을 뚫고 오는 사이렌 소리
마비된 신경과 뭉개진 시선은
끝내 목소리를 양보하고
군번줄 없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
자유민주의 시곗바늘은
오늘도 녹슨 시간을 지나간다
2020년 6월
* 6·25 무명전사자들과 어린 세 자녀를 두고 산화하신 이두남 할아버지께 바칩니다.
6월이 오면 우리는 국기를 게양하고 묵념을 올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충일은 어느새 달력 속 하루의 기념일처럼 지나치기 쉽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줄어들고, 총성과 피난의 기억은 역사책 속 문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산과 들, 이름 없는 능선과 강가에는 아직도 귀환하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 이름이 지워진 무명용사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젊은 청춘들,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전장으로 떠나야 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필자의 시 「비목(碑木)」은 바로 그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시 속의 ‘군번줄 없는 바람’은 신원을 확인할 수조차 없는 무명전사들에 대한 메타포이다. 전쟁은 사람의 이름을 지우고 삶의 흔적마저 앗아간다. 남겨진 것은 녹슨 철모와 쇳조각, 그리고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가는 기억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그 희생의 대가를 너무 쉽게 잊어가고 자유와 평화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것이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꾼 결과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정치적·이념적 대립 속에서 보훈의 가치가 진영 논리의 언어로 소비되기도 하고, 젊은 세대에게 6·25전쟁은 교과서 속 한 장면이나 먼 과거의 사건으로만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맥박을 같이 한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희생은 숫자로 이름은 통계로만 남는다. 현충일은 바로 그 망각에 맞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억의 자리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삶과 희생을 기리고, 그들이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날인 것이다.
현충일은 죽음을 추모하기도 하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 희생이 지켜낸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날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젊음과 생명으로 지켜낸 역사적 결실이다.
현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요 여전히 분단의 현실과 북한의 도발 속에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는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현충일의 의미는 과거에 둘 것이 아닌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살아 있는 책임의 약속이다.
시 「비목」은 결국 사라진 이름들을 향한 애도의 노래이며 필자의 할아버지를 추모한 '시'다. 비목을 나무 표지판으로 볼 것이 아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삶을 기억하는 역사적 증언으로 후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양심의 이정표로 가슴에 새겨져야한다.
오늘은 현충일,
바람처럼 사라진 이름들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 청춘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지켜낸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잠시라도 고개를 숙여 보자.
그 비목이 서 있는 한, 대한민국의 뿌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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