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피리 명인 형제 "풀잎이 내는 케데헌 '골든' 들어보세요"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7-25 14:37

서울시 무형유산 초적 이수자 정재영·정재룡, 29일 국립국악원공연


"작은 귤잎 하나로 우렁찬 소리…휘파람 불듯 자유로운 연주 매력"


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7.24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이 풀잎 하나로 모차르트 '밤의 여왕' 아리아부터 트로트까지 연주가 가능합니다. 이번 공연에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GOLDEN)을 연주할 계획이에요."


지난 24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초적(草笛·풀피리) 명인 정재영(52)은 정성스럽게 포개 놓은 귤나무 잎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와 동생 정재룡(50) 명인은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초적의 이수자다. 초적은 나뭇잎이나 줄기 등 자연 속 재료를 활용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다.


"다른 악기와 달리 불다 보면 금방 망가지기에 조명·온도·습도를 견딜 단단한 잎을 까다롭게 고르고 직접 키우고 있어요. 주로 귤잎과 사철나무 잎사귀를 사용하죠."(정재영)


초적은 궁중악서 악학궤범에 정식으로 향악기로 분류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이 나인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잔치하며 초적(초금)을 직접 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악기다.


기자가 초적 연주를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하자 정재룡이 사철나무 잎 한장을 입에 갖다 댔다. 피리나 태평소와 같은, 깜짝 놀랄 만큼 우렁차고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높이 3옥타브 도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정확한 음정이 연주됐다.


정재영은 "입·혀·목을 움직여 입술과 나뭇잎 사이로 나가는 공기 진동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초적은 관악기에 뚫린 구멍인 지공(指孔) 등이 없기에 연주자가 휘파람 불듯 연구해 정확한 음을 찾아야 한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 전시된 초적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 전시된 초적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 초적이 전시돼 있다. 2026.7.24 ryousanta@yna.co.kr


형제는 어머니인 명창 가야금 명인 김화선과 함께 공연한 초적 보유자 고(故) 박찬범의 연주를 보고 초적에 입문했다.


"가야금 명인 어머니 밑에서 8세 때부터 국악을 했지만, 처음 현장에서 들은 연주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죠. 작은 잎에서 그렇게 큰 음을 낸다는 게 놀라웠고, 머릿속 곡조를 휘파람 불듯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정재룡)


박찬범 명인 밑에서 초적을 배운 그들은 초적 명인 강춘섭이 1934년 남긴 유성기 음반(SP) 음원 복원에 도전했다.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곡이었는데, 오히려 도전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악보도 없는 음원을 수천 번 들어가며 직접 음을 찾고, 익혀서 호흡을 가다듬는 데 4년이 걸렸습니다."(정재영)


형제는 2011년 연주회를 열고 강춘섭 명인의 초적 산조 '부세' 등 4곡을 연주했다. 사실상 소실됐던 소리가 77년 만에 다시 울려 퍼진 것이다. 이 연주회는 현재 국가유산청이 운영하는 국가유산채널에 영상으로 기록돼 있다.


올해 봄에는 국가유산청 궁중문화축전의 일환으로 경복궁 경회루에서 초적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재영은 "기록상 경회루의 초적 연주는 1744년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악사 강상문의 연주가 마지막이었다"며 "이에 따르면 282년 만에 경회루에서 초적이 연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제는 오는 29일 국립국악원에서 어머니 김화선과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스승인 박찬범이 작곡한 '초적 시나위'와 강춘섭의 '부세' 등 복원 연주 외에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의 인기 삽입곡 '골든'과 트로트 음악 '처녀 뱃사공' 등을 선보인다.


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초적 명인 정재영(왼쪽)·정재룡 형제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7.24 ryousanta@yna.co.kr


수십 년을 초적 연구와 전승에 바친 형제의 목표는 오직 어엿한 전통 악기인 초적의 소리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전승 활동은 쉽지 않다. 지난해 박찬범 선생이 별세한 후 초적 보유자와 전승 교육자는 전무하고 활동 중인 이수자는 형제 둘뿐인 상황이다.


정재영은 "가야금 등의 악기와 달리 학교에 정식 과목이나 학위 코스가 개설되지 않고, 전승 교육이 가능한 보유자가 없다 보니 명맥을 잇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공식 이수자로서 틈틈이 강연과 공연으로 초적을 알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가야금 등 대중화한 국악기와 비교하면 초적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제가 처음 듣고 감동받았던 초적의 소리를 현장에서 대중에게 알리고 같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공연의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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