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신언서판(身言書判) ,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달라졌는가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7-29 07:49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인재를 가려내기 위한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 을 세웠다.

당나라 관리 선발에서 비롯된 이 기준은 오랫동안 동양 사회에서 사람의 됨됨이와 자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신(身)은 몸가짐과 품격이다.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단정한 자세와 건강한 생활,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태도를 의미한다.

언(言)은 말이다. 진실하고 품위 있는 언어, 경청하는 자세,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 능력을 말한다.

서(書)는 글이다. 과거에는 글씨가 곧 학문과 인격의 거울이었다. 오늘날에는 글쓰기와 문서 작성 능력,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판(判)은 판단력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고 공정하게 결정을 내리는 지혜와 책임감이다.
이러한 기준이 필요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자격증이나 다양한 평가 제도가 없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 언행과 태도, 글씨와 판단력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인재 선발 방식이었다. 신언서판은 당시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역하고, 그림을 그리고, 복잡한 계산까지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만으로는 경쟁력이 되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제는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디지털 활용 능력, 윤리 의식,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신언서판이 낡은 유물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신은 더욱 중요해졌다. 몸가짐은 자기관리로, 말은 소통 능력으로, 글은 표현력으로, 판단은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발전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사람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신언서판에도 한계는 있다.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편견이 생길 수 있고, 말솜씨가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글씨보다 성실한 실천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결국 사람을 평가할 때는 인성과 전문성, 책임감과 실천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오늘날 입신양명의 의미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 성공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삶이 더욱 존경받는다.

AI는 많은 일을 대신할 수 있지만 양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만 인격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최고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다운 품성과 올바른 판단력이다.

신언서판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가치는 인품에서 시작되고, 신뢰로 완성된다. 그것이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참된 입신양명의 길이다..

"AI가 지능을 높이는 시대일수록 사람은 인격을 높여야 한다. 신언서판의 정신은 바로 그 길을 가리키는 오래된 나침반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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