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드라마·코미디 넘나드는 네 모녀의 복수여행 '경주기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16 08:20

이정은·공효진·박소담·이연 주연…변요한 빌런 연기도 강렬


김미조 감독 신작…8년 전 수학여행지에서 죽은 막내의 복수 나선 가족들


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뚱한 엄마와 장성한 세 딸이 노란 봉고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 안에 큰 벌레 한 마리가 들어오자 네 모녀는 기겁한다. 네 사람은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해 난리를 치다, 창문을 깨뜨리고 나서야 소동을 멈춘다.


빨간색 하트 그림 안에 'FAMILY'(패밀리)라는 글자가 적힌 단체 티를 맞춰 입은 네 모녀는 평범한 가족 여행을 떠나는 듯하지만,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노란 봉고의 트렁크에는 검은 비닐에 쌓인 채 납치된 한 남성이 실려 있다. 원래는 다섯 모녀였던 이 가족의 막내를 죽인 범인이다.


8년 전 막내의 죽음 뒤 무너진 네 모녀는 살인범을 직접 죽이겠다는 계획으로 경주로 떠난다.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은 막내를 잃은 가족의 복수극을 뼈대로 삼은 작품이다. '경주'는 죽은 막내의 이름이자,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수학여행지의 지명이기도 하다.


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살인범을 납치해 죽이러 간다는 설정을 보면 피 튀기는 범죄 스릴러가 예상되지만, 영화는 블랙코미디와 가족 드라마, 거친 액션 등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 중심에는 좀처럼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복수 계획이 있다. 분 단위로 계획을 짜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한 계획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번번이 어긋난다.


그때마다 영화의 분위기도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다시 뭉클한 가족극으로 방향을 튼다.


네 모녀의 개성과 관계성은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장르의 변주를 단단하게 붙잡는다.


한 가족이지만 성격이 판이한 이들을 보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대상을 오가며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눌러뒀던 원망과 죄책감, 서로를 향한 애증이 튀어나오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점차 깊이를 더한다.


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엄마 옥실을 연기한 이정은은 영화가 중후반부에 이를수록 깊어지는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옥실은 무표정한 얼굴로 복수 계획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다가도 한순간 깊은 슬픔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막내의 죽음 뒤 더 이상 살갑거나 다정하지는 않은 엄마가 되었지만, 딸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짧은 말 한마디로 진한 사랑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첫째 딸 장주 역의 공효진 역시 특유의 생활감 있는 연기로 힘을 보탠다.


엄마와 자신을 거의 동일시하는 듯이 순종적인 장주는 결정적인 순간 감정을 터뜨리며 그동안 억눌러 온 상처를 드러낸다. 공효진은 장녀로서 품어온 복잡한 마음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박소담과 이연도 각기 다른 성격의 자매를 선명하게 그려내 실제 가족처럼 티격태격하는 호흡을 완성한다.


변요한은 네 모녀에게 납치된 살인범 백상현 역을 맡았다.


백상현은 살인 사건의 가해자이자 네 모녀에 의한 납치 사건의 피해자라는 이중성을 넘어, 궁지에 몰리고도 온몸으로 악독함을 뿜어내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중반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튀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를 높인다. 복수의 끝에 다다를수록 코미디의 비중은 줄고 액션과 스릴러의 긴장이 짙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후반부는 이 영화가 앞서 쌓아온 웃음과 슬픔, 분노를 한 곳으로 모은다.


네 모녀가 8년간 꿈꿔온 복수에 이르는 과정은 통쾌하기보다는 슬프고 처절한 방식으로 그려져 긴 여운을 남긴다.


26일 개봉. 111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경주기행' 포스터영화 '경주기행'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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