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속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When in Rome, .. ..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10-29 07:13

관습을 존중하되,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인용하는 이 말은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의 관습과 규범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뜻이다. 여행지에서든 새로운 직장이나 조직에서든, 자신이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기보다 그 사회의 질서와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그 기원은 4세기 기독교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얽힌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로마에서는 토요일에 금식하는 관습이 있었지만 밀라노에서는 달랐다. 이 문제로 고민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에게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이 로마에 있을 때는 로마의 관습을 따르고, 밀라노에 있을 때는 그곳의 관습을 따른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서신을 통해 전해지며, 오늘날 속담의 기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지금의 영어 문구가 당시 그대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사회마다 고유한 풍습과 질서가 있다. 자신의 기준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사회의 규범을 존중하는 태도는 성숙한 시민의 기본자세다.

둘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교통법규를 지키고 공공질서를 준수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은 공동생활의 기본이다. 나에게 편리하다는 이유로 규칙을 무시한다면 그 피해는 이웃과 사회 전체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속담을 무조건적인 복종의 논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관습이라고 해서 모두 옳은 것은 아니며, 법이라고 해서 언제나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관행이 오늘날에는 인권 침해나 차별로 평가되기도 한다. 잘못된 관습과 부당한 법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책임의 회피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은 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동시에 법과 제도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법에 문제가 있다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개선을 요구하고, 사회적 토론과 민주적 참여로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법을 지키는 시민의식과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으려는 비판정신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이 대목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입법자는 법을 만들 때 무엇보다 공익과 정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법의 목적이 정당한지, 규제가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는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또한 법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하며, 현실에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부작용을 줄이고, 시행 이후에도 문제가 드러나면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법을 만드는 권한은 국민 위에 군림하라는 특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라는 위임이다.

법치주의의 핵심은 단순히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권력자도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의 내용과 집행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데 있다. 아무리 법을 잘 지키는 국민이 많더라도 법이 불공정하고 권력이 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한다면 사회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다만 그 가르침을 한 걸음 더 깊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동체의 질서와 문화를 존중하되, 부당함 앞에서는 양심과 이성으로 질문해야 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국민의 삶을 먼저 살피고, 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함께 존중해야 한다.

좋은 사회란 국민에게 법을 잘 지키라고 요구하는 사회를 넘어, 국민이 기꺼이 지키고 싶어 하는 공정한 법을 만드는 사회다.

법은 국민을 억누르는 울타리가 아니라 모두의 자유와 안전을 지켜 주는 약속이어야 한다.

로마의 관습을 따르는 지혜에 더하여, 그 관습과 법이 과연 정의로운지를 묻는 용기까지 갖출 때 비로소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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