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대 선물 물질이 아니라 사랑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한 사람 곁에 두는 일

인생의 선물
양희은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봄이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그리도 고운 줄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정말로 몰랐네
내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지고 난 그 후에야
비로소 내 마음에 꽃 하나 들어와 피어있었네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 끄덕이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 하나 있다면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친구만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건 바랄 게 없어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선물
포르그 파로흐자드
나 저 깊은 밤의 끝에 대해 말하려 하네
나 저 깊은 어둠의 끝에 대해
깊은 밤에 대해
말하려 하네
사랑하는 이여
내 집에 오려거든
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주오
그리고 창문 하나를
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
내가 엿볼 수 있게
선물
강인호
내 너무 가난하여
그대에게 줄 것이 없네
헤진 마음 한 자락
곱게 다려 보내드리거니
아름다운 사람 만나
눈물 흘릴 일 있거든
접었던 마음 꺼내어
그대 손수건이 되었으면
선물상자
박상봉
아껴두고 싶은 것들은
서랍 속 선물상자에 고이 넣어둔다
너무 잘 넣어 둔다는 것이
정작 찾을 때 못 찾고 애를 먹기도 하는데
책상 서랍부터 장롱까지 다 뒤져도 안 보이던 것이
각중에 불쑥 나타날 때가 있다
우연히 선물상자를 열었을 때
무슨 보물인 양 소중히 간직해온
잡동사니들
내가 살아온 흔적이 상자에 고스란히 담겼다
별것도 아니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시절인연 다시 마주하였을 때
흑백사진 속 바다는 아직도 잔물결 출렁이고 있다
먼바다에서 밀려온 모래의 말들과
정든 옛집 지붕 위 구름의 수사가
추억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나무에 도드라진 옹두리*인가
옹이 박힌 나무가 더 단단하듯
상처의 내공이 깊어지면
선물상자에 박제된 옛사랑도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을 믿는다
*옹두리 :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
최대의 선물
박남준
꽃이 피어나는 건
당신을 향한 내 사랑 때문이다
지금 별똥별이 반짝이는 건
이 밤 당신께 보내는 연분홍 편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산들이 푸른 숲으로 샘물을 품고 있는 것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인생의 나침판을 삼으라고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선물인 것이다

인생의 선물
인생은 어느 순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가만히 앞으로 밀어놓는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선물이라 부른다.
젊었을 때는 꽃이 피는 것을 본다. 나이가 들면 꽃이 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더 늦게야 알게 되는 것은 피고 짐이 하나의 동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둘을 나눠 생각하느라 오래도록 인생의 절반만을 살았다. 사람은 가난해서 선물을 못 주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어서 손을 펴지 못할 뿐이다.
헤진 마음 한 자락을 다려 보내는 일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접어 내미는 용기의 문제다. 어둠은 늘 먼저 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등불을 들고 오라고 말한다. 그 등불은 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창문 하나 만들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서랍 속 선물상자에는 보석보다 많은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버리지 못한 것들, 버려도 되었을 것들, 그러나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들. 상처는 거기서 옹이가 되고 기억은 결이 되어 나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산은 샘물을 품고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한 사실을 삶의 나침판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낮아지겠다는 선택이다. 인생 최대의 선물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다.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한 사람 곁에 두는 일이다.(박상봉 시인)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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