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⑧]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천재를 시기한 광기에 찬 파멸의 서곡《아마데우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2-19 08:03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세기의 라이벌로 알려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영화《질투는 나의 힘》포스터

시인은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머뭇거림과 탄식과 질투로 가득했다고 고백한다. 끝없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한순간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참회한다. 


혹시 질투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태우고 있지는 않는지요? 질투로 아파하는 모든 분과 마음을 나누고자 ‘질투는 나의 힘’을 주제로 시와 영화 여덟 번째 이야기를 이어간다.


질투의 대상은 질투의 거리와도 밀접하다. 부부나 연인, 형제자매, 친구 사이처럼 그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가 관건이다. 거론한 대상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지고 격이 차이가 나면 질투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또래일 경우 질투의 불길은 활활 타오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혈연 관계인 사촌이 땅을 샀기 때문에 내 배가 아픈 법이다. 평생 일면식도 없던 먼 친척이라면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니까.


질투(嫉妬)라는 글자에서 질(嫉)의 핵심은 계집 녀(女)에 있는 게 아니라 병 질(疾)에 있다.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성급한 마음 때문에 근심하다 결국 나한테 독이 되고 남에게도 독이 되는 것. 이러한 괴로움이 질투에 들어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투(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돌을 던졌으니 병이 들 수밖에. 말이나 행동, 관계 따위로 손해나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병든 상태가 질투다.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꼽을 만큼 질투를 여자만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는데, 사실 질투는 남자가 더 심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질투의 신은 바로 젤로스(Zelos)라는 남성이다. 젤로스의 질투는 경쟁, 열의, 전념 같은 긍정적인 뜻을 나타내기도 있지만,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하는 못된 인간도 많다.


일반적으로 질투는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의 하나’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질투’만큼 인간적인 감정도 없다. 오래전 신석기혁명이 일어나 농경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생산력 증가로 인해 인간이 처음으로 잉여 생산물을 갖게 됐던 그때 여분의 곡식을 골고루 나누지 않고 힘있는 자가 독점하며 계급사회가 탄생한 것도 어쩌면 질투의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오만 가지 것을 질투하며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성취를 이루고, 불멸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아마데우스》포스터.

세기의 라이벌로 알려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를 시기한 평범한 궁정음악가의 질투에서 시작된 광기에 찬 파멸의 서곡이다. 

 

타고난 천재성을 보이며 엘리트 음악가 코스를 밟고 유년 시절부터 황제 앞에서 연주를 한 모차르트와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찬양하고자 해서 뒤늦게 음악을 시작한 살리에리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지만 음악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의 궁정악장이 된다. 꿈을 이룬 걸로도 모자라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살리에리 앞에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모차르트라는 새로운 음악가의 등장은 살리에리를 불안하게 한다.


살리에리 눈에 비친 모차르트는 유흥을 즐기고 씀씀이가 헤프며 웃음이 경박하고 교양 없는 사람인데, 저런 사람이 나와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노력도 하지 않는데 작곡하는 것마다 히트를 친다? 이만큼 부러움과 동시에 열 받고 짜증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황제마저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듯하자 살리에리의 시기, 질투는 극에 달하고 대부분이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궁정 악장들의 텃세 속에서 모차르트를 도와주는 듯하면서 그의 입지를 위협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천재성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기 싫어 발버둥 치는 것에 불가했다.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머릿속으로 음을 그려나가는 살리에리는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모차르트가 죽기를 누구보다도 바라지만 막상 모차르트가 진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작곡을 의뢰받고 작업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쓰러지자 제일 먼저 달려 나간 사람이 살리에리다. 노력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타고난 게 아닌 이상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시기, 질투가 애증이 되어버렸다는 걸 잘 표현해 주는 장면이 아닐까.

영화《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질투는 나의 힘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기형도라는 천재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오늘도 나는 세상 오만 것을, 심지어 좋은 시절을 보내던 예전의 나까지 질투하며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개봉한 영화도 있다. 사랑·질투·결핍이라는 감정을 차갑고 실험적인 미장센으로 해부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 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사람은 질투의 존재다. 결국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는 것 같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기 질투하고 경쟁심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질투란 상대를 너무 좋아해서 상대가 나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감정을 뜻한다. 내 연인이 다른 이성과 즐겁게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건 바로 이 질투 때문인데, 이런 감정이 없다면 오히려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간혹 남자친구나 남편의 질투가 너무 심해 괴로운 여자도 있다.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것만 봐도 난리가 나고, 카페에서 맞은 편 자리에 있는 남자와 눈만 마주쳐도 불같이 화를 내는 남자 때문에 미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남자들과 회의도 해야 하고 술도 마시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마치 바람을 피우다 걸린 사람처럼 화를 내거나 짧은 치마를 입어도 싫어하고, 회식 가서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은근 위험하다고 감시하는 남자가 적지않다.


그런 경우 세상 남자들이 워낙 위험하고, 그녀가 너무 예뻐서 자기도 모르게 불안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남자의 심리가 질투인지 집착인지, 점점 더 심해져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내 남자는 다른 남자들을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남자가 제일 위험한 나쁜 남자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랑과 질투는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다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질투가 심해지면 ‘집착’이 된다. 집착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밖으로 드러나 상대를 심하게 구속하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는 위험한 물질이 되기도 한다.


영화《질투는 나의 힘》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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