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우연한 사고이고 마법이다
남자의 순정과 사랑, 지극히 개방적인 여자 이야기
일처다부제 주장, 결혼제도의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
영화《아내가 결혼했다》한 장면
돌 깨는 남자
나는 열린 책이다 열린 책 속으로 그가 걸어 들어온다 돌 깨는 기계처럼 격렬하게 지축을 울리고 자제력을 마비시키는 힘 맛보고 냄새 맡고 할퀴고 신음하면서 자작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워진 달빛 아래서 노동하듯 사랑을 나눈다 여윈 몸을 열고 모든 것을 보여준다 엄마와의 갈등 열여섯 살의 유산 어둠에 대한 공포 불에 대한 애정
그런 것들은 잊혀진 상처다 지금 나의 생활은 완벽하다 완벽한 가슴 완벽한 치아 완벽한 피부를 가진 완벽한 사랑은 감미롭고 황홀한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쏟아지는 홍수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탄력 터질듯 부풀어 오른 힘 손 안에 거머쥐고 마냥 부비고 어루만지며 보고 또 듣는다 화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지축을 울리는 기적소리 이명 속을 헤매다가 가슴을 치고 목덜미에 한 자락 여운을 남기고 가는 사랑
참으로 남녀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우연한 사고이고 마법이다
ㅡ박상봉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곰곰나루)
조선시대의 풍속화 공재 윤두서의「돌을 깨는 남자」
「돌 깨는 남자」에서 사랑은 흔히 연상되는 감미로운 교류나 정서적 합일이 아니다. 사랑은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에너지의 방출, 즉 “돌 깨는 기계”, “지축을 울리는 힘”, “기적 소리”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힘이 상대를 파괴하는 방향이 아니라 ‘열린 책’인 화자를 관통하며 드러내는 힘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노출이고, 개방이다. 엄마와의 갈등, 유산, 공포, 불에 대한 애정까지 사랑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강력한 소음과 진동을 만든다.
시의 중반부에서 화자가 말하는 “지금 나의 생활은 완벽하다 완벽한 가슴 완벽한 치아 완벽한 피부”에서 ‘완벽함’은 이상적인 사랑을 향해 치닫고 있다. 특히 “참으로 남녀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우연한 사고이고 마법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사랑을 제도나 계약이 아닌 사건(event)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폴리아모리적 사고와 닿아 있다. 사랑은 하나의 인생 서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순간적 진동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운명적·독점적 사랑의 종말을 선언한다. 사랑은 때로 돌을 깨는 일처럼, 소음을 남기고 사라지는 사건이어도 충분하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포스터
사랑의 종말인가? 미래의 사랑인가 ?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공인 인아는 외모와 내면 모두 매력을 고루 갖춘 여자다. 그런 인아에게 덕훈은 빠져들게 되지만 사실 인아는 덕훈 ‘하나’만을 사랑할 수 없는 인물로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남자와 잤다는 인아의 발언을 듣고 덕훈은 이별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인아를 포기할 수 없었던 덕훈은 인아를 독점하기 위해 ‘결혼’을 하기로 한다. 결혼했기 때문에 덕훈은 이제 인아를 온전히 ‘소유’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아는 또 한번의 충격 고백을 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고, 그와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덕훈은 그녀의 연애관을 받아들이고, 아내의 결혼을 허락한다. 이중결혼을 한 것이다. 이 영화는 박현욱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원작 소설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3류 연애소설이 아니다.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축구와 인생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 흥미롭게 전개되는 본격적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남자의 무한한 순정과 사랑, 그리고 지극히 솔직한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전제 아래 일처다부제의 행위를 통해 기존 결혼제도의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를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풀어 놓는다.
대놓고 이중 결혼을 한 아내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남편의 모습이 축구 이야기와 교차를 이루면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사랑과 결혼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 놓는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한 장면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라는 새로운 사랑관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폴리(poly)는 ‘많다’라는 뜻, ‘아모르(amor)’라는 사랑이라는 뜻의 합성어다.
즉, ‘다자연애’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세 명 이상의 사람이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사랑하는 상태를 ‘폴리아모리’라고 하며,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된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형태인 ‘일부일처제’, ‘일처다부제’와는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낯설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문제 역시도 뜨거운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이드는데. 일단 확실한 것은 폴리아모리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꼭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먼저 알려주고 시작하는 것이 예의이며 정석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냥 ‘바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폴리아모리’의 의미를 한 번 이해해보고 생각해보고자 할 때,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나 원작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영화《원초적 본능》에서의 샤론 스톤
팜므 파탈(femme fatale)
프랑어로 여성을 의미하는 팜므와 치명적, 또는 숙명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파탈이 결합된 말이다. 거부할 수 없는 관능적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이다. 팜므 파탈에 반대되는 말로 옴므 파탈(homme fatale)도 있다.
프랑스어로 ‘치명적인 남자’라는 뜻으로 ‘옴(homme)'은 ‘남성', ‘파탈(fatale)’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을 뜻한다.
남성들에게 ‘치명적인 여자’란 뜻으로 필름 느와르 장르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19세기 문학 작품에서 쓰이기 시작한 이 용어는 영화에서 악녀나 요부를 의미하게 되었다. 필름 느와르에서는 사악한 내적 욕망을 숨긴 채 아름답고 매혹적인 외모로 주인공 남성에게 다가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 인물로 그려진다.
팜므 파탈이 문학적인 캐릭터로 가장 잘 형상화된 것은 문학사의 유례 없는 스캔들을 일으킨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라고 말해진다. 그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의 열 가지 태도를 정의해 팜므 파탈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팜므 파탈은 상징주의와 세기말 탐미주의가 풍미하던 19세기 말의 인기를 누렸던 이른바 요부형 여인상이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영화와 광고의 경우처럼 성의 상품화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수용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드러나곤 한다.
영화사에서 팜므 파탈의 본격적인 등장은 필름 누아르에 이르러서였다. 아름다운 악녀의 이미지가 가장 대중적으로 각인된 것은 《원초적 본능》에서의 샤론 스톤이다. 우리나라 사극에서 팜브 파탈의 전형은 장희빈을 손꼽을 수 있다.
‘폴리아모리’의 상태는 사랑의 종말이 왔다고 봐야할까? 진보된 사랑의 미래 모습일까?
결혼의 시작, 인류 최초의 부부
흔히 사랑의 결실을 결혼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최초의 인류 아담과 이브 사이에는 사랑이 머물 틈이 없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이브라는 여자를 만들어 바로 아담과 부부로 살아가게 한다.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이른바 선악과를 따먹게 함으로써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파멸에 이르게 한다.
1861년 바젤대학에서 로마법을 강의하던 바호펜 교수(1815~1887 : 스웨던의 인류학자이며 법학자)는 ‘아담과 이브의 불평등 일부일처제’를 비판하고 인류의 존엄성에 있어 금기로 여기는 ‘원시인류의 난잡한 암수교접’을 당당히 옹호하는 강의를 하여 일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바호펜 교수는 원시사회에 있어서 결혼 형태의 발전을 3단계로 나누었다. 제1단계 아프로디테 여신으로 상징되는 창부제의 단계. 제2단계 데메대르 여신으로 상징되는 여인정치제의 단계
제3단계 아폴로 신으로 상징되는 부권제의 단계다.
원시난교제, 집단혼,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성에 있어 자유로왔던 원시인(미개인)의 성생활이 ‘방종’과 ‘타락’이라면 문명인의 성생활은 과연 ‘순결’한가?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고 못마땅할는지 모르겠지만 ‘결혼의 진정한 가치’는 ‘남녀의 완전한 평등’에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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