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⑬] 장정일의 거짓말, 폭로된 욕망의 언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02 09:15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

시 


장정일


당신 팬티를 백 번 내리고

거기에 천 번 입맞춘다


내 팬티를 천 번 내리고 

당신이 주는 만 번의 매질을 받는다


독자는 시를 건성으로 읽는다 

그렇지 않다면

방금 읽은 시에 나오는 숫자의 합을 대 보라


영화《거짓말》한 장면

장정일의 시에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 중에 하나는 ‘섹슈얼리즘(sexualism)’을 중심으로 한 미학·사상·표현 경향이 두드러진다.


장정일의 시적 섹슈얼리즘은 흔히 권력의 배치를 동반한다. 가학/피학의 구도, 신성/피조물의 전도, 주체/객체의 교환은 개인의 은밀한 욕망을 넘어 사회적 위계와 폭력의 은유로 확장된다.


낭만의 반대편에서, 현대적 관계의 파열을 가장 노출된 언어로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장정일의 시는 외설 논쟁을 스스로 호출한다. 그러나 그 호출은 변명의 장치가 아니라, 시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되돌려주는 전략이다. 읽는 이가 불편해질수록, 시는 목적을 달성한다.


성에 몰두하는 것을 성도착증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도착증이 심각한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경우엔 문제가 되겠지만 개개인의 성적 취향을 성 도착증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성적 행동은 서로의 관계에서 동의할 경우 일반적 사랑의 형태이고 개인의 성적 취향일 뿐이다.


장정일의 시나 소설에는 외설적인 내용과 노골적인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심하다 싶을 정도의 작품도 많다.


영화《거짓말》포스터장선우 감독 영화 《거짓말》은 본래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내용을 비교해보면 영화 《거짓말》보다 소설에 더 강렬한 외설적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장정일 작가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거짓말》은 억압의 사례인 동시에 확장의 분기점이 되었다. 당시 논쟁은 법정이나 심의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배급 거부, 상영관 축소, 언론 프레이밍이 결합해 작품의 생명력을 제한했다. 이는 제도 밖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제도였다. 표현은 허용하되, 도달을 차단하는 방식—검열의 현대적 얼굴이다. 《거짓말》을 둘러싼 파문은 이 메커니즘을 집단적으로 학습하게 만들었다.


영화 《거짓말》과 1990년대의 논쟁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검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선정성이 아니라 질문이다. 답을 제공하지 않고, 판단을 유예하며, 관객을 책임의 자리로 밀어넣는 질문—그 질문이야말로 정치적이다. 이 영화는 성을 통해 그 질문을 가장 노골적으로 던졌고, 그래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결국 이 시기의 검열·금기 정치학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판단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장선우 감독 영화《거짓말》의 원작 장정일 장편소설『내게 거짓말을 해봐』

장정일은 시, 소설, 평론, 영화를 넘나들며 독자와 비평계 모두로부터 논란과 함께 꾸준한 주목을 받아온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천재작가다.


1987년, 장정일은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한국문단을 깜짝 놀래켰다.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된 그는 중졸 학력에 나이는 겨우 25세에 불과한 애송이었다. 그래서 문단 일각에서는 ‘김수영문학상이 청소년 문학상이냐?’ 하고 빈정대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장정일은 이듬해 시집 『길 안에서 택시잡기』로 시단에 돌풍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단편소설 ‘펠리컨’까지 발표하며 작가로 등단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가장 연소한 김수영문학상의 수상자가 된 이후 소설가로 변신한 장정일은 그 여세를 몰아 2년 뒤에는 중편소설 『아담이 눈뜰 때』를 출간하더니 잇달아 수많은 문제작을 내어놓았다. 그의 소설은 영화화 되면서 더 한층 유명해졌다.


장정일의 소설은 잇달아 영화화 되면서 더 한층 유명해졌다.

엉덩이가 이쁜 여자 정선경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아담이 눈 뜰 때』, 신세대적인 독특한 문화와 특이한 화법으로 유명해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등이 영화화 되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1996년 가학섹스 동성애 그룹섹스 등 충격적인 성묘사를 담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파란을 일으켰고, 1999년에는 『보트하우스』를 잇달아 내놓았다.


그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 보면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제일 먼저, 이렇게 시작되는 내 열아홉 살의 초상을 그릴 것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타자기는 나중에 그의 네번째 소설 『보트 하우스』에  클로버727 타자기로 다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나는’은 잃어버린 타자기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던 중에 이주민이라는 열아홉살 소녀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타자기를 찾는 모험의 과정이 환상, 소설과 현실을 오가며 기발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장정일의 소설 『보트 하우스』는 문학청년 시절 사용했던 구식 타자기를 그리워하면서 찾아다니는 한 소설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환상 소설이다. 


장정일의 첫 소설 『아담이 눈뜰 때』의 첫 문장에 나오는 타자기를 찾아가는 ‘나는’이라는 이름의 소설가, 소설가의 뮤즈 격인 타자기로 변신한 ‘이주민’이라는 소녀, 초능력을 가진 전당포 노인, ‘낙양성 십리허에’라는 민요의 후렴구 ‘애라 만수- 애라 대신이라-’에서 따온 ‘애라’와 ‘만수’와 ‘대신’, 그리고『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여주인공 ‘와이’ 등,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마치 질주하는 롤러코스트와 같은 가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외설 판정으로 구속 수감된 후 2년 만에 『보트 하우스』를 내놓은 장정일은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많이 부숴 보니까 이제는 내 생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속도 빠른 자본주의사회에 브레이크 걸기, 컴퓨터 대신 수동타자기로 글을 쓰며 저항하기 류의……. 그게 작가가 해야 할 몫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청년 시절 사용했던 구식 타자기를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한 소설가를 둘러싼 환상 소설『보트 하우스』를 읽고 맨 처음 글을 쓰고자 했을 때의 마음을 찾아 환상과 아이러니를 품고 길을 떠나는 주인공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타자기와 장정일과 나 사이에 얽힌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장정일과의 인연은 1980년 즈음으로 기억난다. 장정일과 박기영 안도현 시인과 《국시》동인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작품 발표를 시작한 시기였다.


장정일과 박기영, 안도현 시인이 함께 한 동인지《국시》

가끔 쌀 살돈, 책 살돈, 씨디 살돈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내 궁핍한 주머니를 심심찮게 털어가던 장정일.


나도 먹고 살기 빠듯한 시절이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천원만..이천원만’ 하고 손을 내밀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장정일이 ‘시인다방’으로 나를 찾아와서 쌀값이 떨어졌다면서 2만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 그동안 심심찮게 꾸어 간 돈이 적지않은 터라 그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타자기를 내게 억지로 맡겼다.

 

전당포도 아닌데 타자기를 저당 잡을 이유가 없다고 돈은 아무 때나 형편되면 갚으라고 그날 매상에서 반을 잘라 2만원을 손에 쥐어줬는데 기어히 타자기를 맡기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타자기는 지금 대구문학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영화《거짓말》의 한 장면

내 말이 그 말이야


장정일



나는 당신의 발가락을 빨았지

하나, 하나씩 묵주처럼 빨면서

우리 관계가 영원하기를 빌었어


그리고 당신의 항문을 핥았지 뾰족하게 세운 혀로 

우주의 비밀을 감춘 앙다문 문을 두드렸지

음침한 매력 속에 허우적댔지


그리고 당신이 만든 물을 마셨지 당신의 두 다리 사이에 꿇어앉아 당신이 내민 질구에 입을 갖다 댔지 당신은 하느님이고

나는 당신이 오줌을 먹여 키우는 피조물이었지 


그리고 나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발목을 잡았지 

당신은 내 엉덩이에 매질을 했지 메트로놈 박자처럼 메말랐던 매질 주위가 하얗게 변해가고 있어 


섹스가 사라진다 

사랑이라는 악무한도 사라진다 

나는 사라진다 나는 

그가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안다 

흠씬 두들겨 맞고, 못질까지 당했지만

가슴 터질 듯이 행복했던 자

그는 그때 완전히 죽었던 거야


하지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간절한 사랑을 비웃었지 

나는 깨끗한 것만 골라 입 맞추는 당신의 혀가 미웠는데 

나는 당신이 꿈꾸는 산업이 더 역겨웠는데 

“그러니까 J, 간절한 접점이 없으니,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거지?”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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