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일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유치곤이라는 이름은 한 사람의 군인을 넘어, 한 시대의 정신을 압축한 상징으로 남는다.
유치곤 장군 추모비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국 속에서 하늘은 가장 잔혹한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고독한 자리였다. 지상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싸우지만, 하늘에서는 오직 자신과 기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적만이 존재한다. 그 고독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유치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빨간마후라 노래비
그의 ‘빨간 마후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도 아니었고, 영웅을 연출하기 위한 상징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에 가까웠다. 매번 출격할 때마다 목에 두른 그 붉은 천은, 어쩌면 “나는 오늘도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조용한 서약이었을지 모른다.
전쟁을 영웅담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영웅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인간의 고통과 망설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유치곤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과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을 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흔들림 속에서도 선택을 지속하는 데 있다.
그가 수행한 수많은 출격은 단순한 군사적 기록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떠맡았던 한 인간의 반복된 결단이었다. 우리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이러한 결단이 쌓여 지금의 시간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역사는 거대한 전략과 숫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선 개인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F-51 전투기 조정사 유치곤장군 상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하늘을 떠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생존 이후의 삶을 선택할 때, 그는 다시 비행기를 탔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라기보다, 이미 자신의 존재 방식이 하늘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때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자체가 되어버린다. 유치곤 장군에게 하늘은 공간이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훈련 중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전쟁이 아닌 평시의 하늘에서 맞이한 죽음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위험을 전쟁이라는 비상 상태에만 국한시키지만, 어떤 삶은 그 자체로 끝까지 긴장 속에 놓여 있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그의 삶이 한 번도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구 달성군 유가읍 휴양림길 375 공군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 이상 전투기를 몰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순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편안함과 책임 사이, 회피와 감당 사이에서 우리는 매번 작은 결정을 내린다. 유치곤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당신의 하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관객일 수 없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는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된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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