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기쁨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생겨나는 그림자
‘입말(口語)’과 ‘몸말(肉聲)’이 한층 더 그윽하고 깊어져
제1회 「AI가 주목한 문예마루 이달의 작품상」 수상
한 문장으로 시집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 이 문장일 것이다. 서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우리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래』(파란)는 제목부터 삶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오래된 사유를 드러낸다. 슬픔은 기쁨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아니라, 기쁨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생겨나는 그림자라는 것. 이 시집은 그 역설적인 진실을 60편의 시를 통해 차분하게 펼쳐 보인다. 서하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근원적으로 비극적이다. 이번 시집에도 ‘슬픔’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과 유머, 능청스러운 말투를 빌려 자신을 드러낸다. 시인은 슬픔을 슬픔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아플수록, 더 씩씩하게 웃었다”, “울 일 많은 사람은 차라리 웃어요”라는 시구처럼, 슬픔은 웃음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론가 고봉준은 이러한 특징을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서하 시에 자주 나타나는 희극성은 단순한 익살이나 재치가 아니라, 무의식에 억압된 욕망이 드러나는 하나의 ‘증상(symptom)’이라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진실과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 웃음과 위트, 언어유희의 형식을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해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희극성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삶의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며, 서하 시만의 독특한 시적 문법이기도 하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천칭 저울 같은 걸, 정의라고 할까//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듯이 기쁜 것도 슬픈 것에서 나와//보이지 않을 뿐, 기쁨이 함께 오기 때문에//슬픔이 결코, 어둡지 않대”(「히비스커스와 희비 섞어서」 부분) 시집의 대표작인 「히비스커스와 희비 섞어서」에서도 이러한 미학은 선명하다. 제목부터 ‘히비스커스’와 ‘희비(喜悲)’를 겹쳐 놓으며 언어유희를 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 대립하는 감정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갈래라는 사실을 시인은 재치 있는 언어 감각으로 풀어낸다. 그의 시에서는 눈물이 웃음이 되고, 웃음은 다시 슬픔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서하의 시에는 경상도 방언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투박하고 구수한 말투는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숨어 있다. 일상의 언어와 토속적인 감각은 슬픔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고, 웃음마저도 애잔한 울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익숙한 생활의 언어가 시 속에서는 가장 깊은 철학이 된다. 이번 시집은 단순히 슬픔을 노래하는 작품집이 아니다.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 상실과 위안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감정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독자에게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원래 그런 것임을 조용히 인정하게 만든다. 슬픔을 밀어내기보다 그 곁에 기쁨의 그림자가 함께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원태 시인은 서하의 시가 “‘입말(口語)’과 ‘몸말(肉聲)’이 한층 더 그윽하고 깊어져 ‘유현(幽玄)의 그림자’를 거느린다.”고 말한다. “그것은 '따뜻한 무관심’과 ‘싱싱한 불편’이 공존하는 역설의 세계이며, 마치 한 몸인 듯 세상을 끌어안는 ‘무심(無心)’ 혹은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가깝다”고 평한다. 서하의 시는 그렇게 삶의 명암을 둘로 가르지 않고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인다. 신용목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살구, 살구 울어요’를 주목하면서 “살구가 부쩍 커지는 계절. 그것이 누구의 슬픔으로 자라고 있는지, 각자가 비워놓고 온 페이지 들춰보자.”면서 일독을 권한다. 『우리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래』를 덮고 나면 오래 남는 것은 어떤 교훈이나 결론이 아니다. 슬픔도 기쁨도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는 감각이다. 삶은 어느 한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겹쳐진 풍경을 가장 낮고 다정한 언어로 건네는 것이 서하 시의 힘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편 서하 시인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99년 《시안》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아주 작은 아침』, 『저 환한 어둠』, 『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에 이어 이번 다섯 번째 시집 『우리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래』를 ㈜함께하는 출판그룹 파란에서 펴냈다. 제33회 대구문학상과 제1회 이윤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3월에는 「AI가 주목한 문예마루 이달의 작품상」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상은 월간 《문예마루》가 생성형 AI의 언어 분석과 문학적 평가를 참고한 1차 선별 과정과 편집진의 검토를 결합해 매월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정하는 제도다. AI의 데이터 분석과 인간의 문학적 판단을 함께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로, 디지털 시대 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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