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랠리 셋째날
알제, 맑음
파리에서 자르다이아Cardhaia까지 셋째날 아침에 선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배는 알제 항에 정박 해있고, 알제리 정부 고위관리가 마중 나와있다. 대회장 질베르 사빈느씨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염려 말라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잠시 후 그 고위 관리라는 사람이 몇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아직 출입국 관리 구역 안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내비자 발급에 대해 난감해 하는 그에게 사빈느 씨는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나, 이 친구 꼭 데리고 갈 겁니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수행원들과 이슬람어로 잠시 이야기를 한 후 내게 말했다.
"불행히도 한국과는 외교 관계가 없어 비자를 내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알제리 현지 비자 발급은 절대 안 됩니다." 나는 그의 유창한 불어보다 그의 말뜻에 긴장이 되어 절로 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렇지만 이번에 대회장 질베르 사빈느 님의 부탁이니 특별히 당신에게 비자를 내주겠소.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알제리를 잘 소개해 주시오." 그리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머쓱해지는 기분을 억제하며 감사를 표하고 'Your Excellency' 라고 최고의 존칭을 써주었다. 그는 옆 수행원에게 눈짓을 하더니 내게 따끈한 아랍 커피까지 권했다. 나는 커피 온기에 몸을 녹이며 말했다. "제가 정치가나 외교관은 아니지만, 한국 최초의 국제 카레이서로서 바람을 말씀드린다면... 장관님의 배려가 우리 한국과 알제리 양국 간 첫 스포츠 외교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자를 주니 돌아가거든 알제리를 잘 이야기해 주고, 우리 정부의 호의도 전하여 주시오."
파리 다카르 랠리의 본 코스는 알제리, 니지르, 말리, 모리타니아를 거쳐 세네갈의 다카르에 이른다.
오전 9시. 알제리 수도 알제 외각 스타디움에서 우리는 623km 떨어진 자르다이아 Cardhaia로 출발했다. 비가 오고 있어 흙탕물이 차를 덮쳤다. 50km 지점의 브리다Blida를 지나 높은 산간 지대로 들어섰다. 알제리 해안에서 계속되는 기름진 땅은 이 산줄기를 넘으면서 끝이 나고 이어 광대한 북사하라가 시작된다. 산간 코스는 우리나라 강원도 산골짜기처럼 높은 절벽과 계곡, 커브가 많은 길로 내가 평소 좋아했던, 자신감 있는 코스다. 비옥한 산간에 많은 종려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1시간 후 나무가 점점 드물어지는 고원 지대를 지나 광막한 황야의 지평선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평균 시속 170~180km.
황야는 점점 사막성 벌판으로 변하고
땅으로 낮게 깔리는 모래바람이
뱀처럼 우리 앞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다.
몸에 전해지는 타이어의 감축이 미묘해
나는 제롬에게 핸들을 넘기고
우리 가곡 <떠나가는 배>를 크게 들었다.
우리 차는 도요타 랜드크루지. 제롬은 차를 개조할 때 사막 모래에 며칠 작동 못 할 것이니 카세트를 붙이지 말자고 했지만 내 고집으로 기어이 붙여서 왔다. 본래 경주 차에 는 차체 중량을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자의 내장품이나 나사 하나까지 뻬버린다. 내가 튼 우리 가곡은 이 막막한 사막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다.
"저 푸른 물결 헤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살구꽃 풍경 따스운 내 고향, 모시올 같은 땅거미가 동네 골목으로 스며드는 내 나라의 정겨운 노래가 황폐한 광야 천지에서는 의미 없이 들린다. 그래도 노면 상태가 좋아 나는 지휘자 흉내 내고 제롬은 오페라 가수처럼 목을 빼고 "기어이 가고야마느냐..."라고 불러 젖혔다.
황량한 석양 속에 군데군데 묻힌 기적 같은 오아시스를 지날 때에는 황야 빛을 닮은 양떼들과 목동, 그리고 젤라바Djellabah를 입고 얼굴 깊숙이 터번을 감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제로부터500km지나 우리는 나란히 볼일을 본 후 비스킷과 오렌지로 요기를 하고 또 달린다. 저녁6시55분 자르다이아도착 사막끝으로 갑자기 언덕이 나타나며 그 아래 분지에 큰 오아시스 마을이 모습을 보인다. "아, 저곳에도 삶의 불이 켜져 있구나."
비박 장소에 오니 이 코스에서 5대의 차와 2대의 오토바이가 사고로 후송되었다 한다. 죽음의 대질주가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온 코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일부턴 수십 배 험한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침낭에서 사막별을 보며 기도하리라.
배가고프다.
열정, 아름다움, 단순함, 냉혹함... 사하라는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조신한 처녀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내 숨결마저 말려버릴 것 같은 사하라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주에 계속...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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