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열세째 날. 니아메의 긴 밤_최종림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02 16:41

맑고 건조

타우아Tawa-니아메Niamay. 600km. 총 주파7.732km.




차도, 사람도 만신창이가 되어

오늘은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 입성하는 날이다. 잔뜩 기대된다. 아침 6시 기상.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어깨에 맷돌을 올려놓은 듯 몸은 무겁게 쳐지고 계속 눈이 감긴다. 어제저녁, 이곳 토인들이 구운 양고기를 먹은 게 탈이 난 것일까? 모기에 많이 물려 뇌염 증세 같기도 해 걱정스럽다. 아니면 그동안 쌓인 과로로 내 몸이 기어이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아무튼 죽고 아픈 건 두고 볼 일이다.
아침 9시. 46.80km 지점에서 정북 방향으로 수정, 얼마 후 계속 미끄러지며 초원의 나무들을 피해 가다 고목에 차 엉덩이가 걸쳐질 뻔 했다. 미끄러지며 틀리는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핸들링을 했으나 엉덩이가 또 부딪혀버렸다. 제롬은 콧수염을 치켜세우고 눈을 찡그리며 쫑알 거렸다.
"에, 인마 잘해... 바보같이. ... 하기야 엉덩이가 다 깨져 버렸으니. 여자 매력은 다 떨어져 버렸지 뭐. 버릴 년이야 어차피..."
벌써 몇 번이나 부딪혀 뒤가 찌그러진 것에 체념 섞인 불평이다. 하지만 경주가 끝나면 폐차를 해야 할 것이나 나는 이 정든 애마를 한국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대망의 다음 해, 우리 한국 차를 만드는 데 프로토콜, 모형 차로 사용해야 한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경나선 아이들. 멀리 생명의 강, 니제르 강이 보인다. 


67.50km. 검은빛이 도는 황무지에 수많은 흰개미 집이 보인다. 그것들은 황토로 쌓아 올린 단단한 탑 같기도 한데, 어떤 건 사람 키를 훨씬 넘는다.101km, 내리막 벌판 속의 많은 웅덩이를 오르내리며 차는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 죽는소리를 내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엉덩이까지 깨진 것이...
로드 북에서 고개를 드니 건너편 언덕 아래 맑은 호수가 나타났다. 찬란한 햇빛에 눈이 부신 물가에는 소 떼와 낙타 떼가 목동과 함께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이곳 마을 사람들은 건조한 흙먼지 속에서 조악하게 살고 있다. 아이들은 씻지 않은 때가 피부에 굵은 각질을 만들었다. 이렇게 물 좋은 마을이 황폐해 있음에 마음 한 편 스산하다. 하지만 저 흙먼지 속, 세시로 가려진 여인네 얼굴 그리고 그들의 얽은 나무집 깊숙한 어디쯤에는 내가 본 적 없는 안식과 평온함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조금 다르게 살았을 뿐이려니... 우리도 오랫동안 토담집 부엌 넘어 단칸 방에서 예닐곱 식구, 군불 때고 긴긴 겨울 힘들게 살아온 시절이 대부분이지 않았던가?


164.25km. 인가두 촌락 지남. 깊은 모래와 와디 방향. 나침반 방향 270° 서쪽으로 계속 직진.
234km. 돌멩이 길의 연속으로 하도 머리가 무거워 헬멧을 벗어버렸다. 메주만 한 돌투성이 길을 터털거리니 오장 육부가 다 튕겨 나갈 듯 하다.


마을 어귀에 노인 한 명이 쓰러져 있다. 차에서 급히 내려 보니 노인은 머리와 배가 아픈 시늉을 한다. 배에 큰 혹 같은 것이 나 있고 노인의 몸짓, 표정으로 보아 심한 병에 걸린 것 같다. 나는 차 의자 밑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내 한 알을 입 안에 넣어주고 나머지는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마침 우리들 위로 날아가던 S. O. S 의료 헬기가 우리 차의 사고로 오인하고 요란한 먼지를 일으키며 내렸다. 착륙과 동시에 헬리콥터 문이 열리더니 약상자를 들고 의료진이 뛰어 왔다."엇! 잘 왔어. 이 노인이 진짜 당신들 손님이야.:. 잘 해줘." 그들은 앙상한 노인의 엉덩이에 겁나게 큰 주사기를 내리꽂았다. 그리고 그들도 한 움큼 약을 노인에게 건넸고, 1분 1초가 급한 우린 그들을 두고 내빼듯 그곳을 벗어났다.
"저 노인... 복 터졌는데... 그런데 약 너무 많이 준 것 아냐?"
제롬이 걱정스레 소리 질렀다.
"염려 마, 인마..."
나도 차 엔진 소리에 고함을 질렀다.
"내가 준 약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많이 먹어도 안 죽어, 인마."

엔진 과열로 검은 연기에 휩쓸린 차316.50km 우리 앞을 낮게 날아간 헬리콥티에 피투성이의 경주자가 고무 튜브에 싸여 옮겨지는 것이 보인다. 그들 차는 바위 언덕 아래 굴러 떨어져 있다. 오, 사하라의 하느님...! 나는 고개를 떨군 채 그들이 떠난 피 흘린 빈자리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우리는 한국인

341km. 평균 진행 방향 330~340°. 초원, 초원. 계속되는 초원의 깊은 모래와 그 속에 박힌 돌 더미 위를 달리고 있다. 멍함과 지루함, 긴장이 범벅되어 기함할 지경이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느끼는 지루함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다. 또 헬멧을 벗어 뒤쪽 연료 통으로 던져버렸다. 로드북에 얼굴을 묻고 있던 제롬이 놀라 날 쳐다보며 손가락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며 돌려 보인다. 너 미쳤냐고 묻는 프랑스식 시늉이다.
"그래.. 미쳐 나가겠다.!"
하며 내가 빈정거렸다.
"넌 괜찮냐:.. 돌머리?"
제롬은 말없이 반쯤 일어나 헬멧 벗은 내 맨머리에 주먹을 한 대 쥐어 박았다. 눈이 찡그려지도록 아팠지만, 핸들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어 나는 꼼짝없이 앞만 쳐다보며 몇 대를 더 맞아야 했다. 묘하다. 맞고 나니 정신이 든다.
"그놈들(조금 전 사고로 헬리콥터에 실려 간 두 주자.) 머리도 돌머리라서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독한 빈정거림에도 제롬은 말이 없다.
"놈들.. 살았으면 좋겠는데..., 으응?"
나는 머리를 많이 다친 듯 얼굴에 선혈이 낭자한 모습의 그들을 걱정하며 물었다.
"살 수 있을까?"
"...,"
제롬은 고개만 가늘게 흔들 뿐 끝내 아무 말이 없다.


미친 듯 서두르는 우리 앞에 나타난 평화로운 풍

511km. 아이쿠..., 시속 180km로 달리던 차가 작은 메주 돌을 때렸나 보다. 차 후미 오른쪽 타이어가 맹렬한 소리로 찢겨 나갔다. 차는 몇 번이 나 들렸다 내리며 비틀거렸다. 이때는 조종기술에서 얘기하는 '자전거 타기'로 중심을 가늠하며 넘어지지 않고 200여 m를 굴러와 간신히 멈추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소리를 낼 수 없다.큭큭.저녁 8시 30분. 오늘은 모래밭이 아닌 별밭 아래 최고의 호텔 숙박이다!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의 가장 큰 호텔인 기와이 호텔에 도착하니 온 통 축제 분위기다. 도시는 우리들을 맞는 새까만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 힘이 다 빠져버린 몸으로 로비에 앉아 흥분한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북쪽 사람인 듯한 남자들이 내 방화복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보고 수군거리며 내 앞을 얼쩡거린다.
"어이... 안녕하시오... 신사 양반들..."
나는 사람들 속에 앉은 채 눈을 들어 꽤 크게 소리쳤다.


조그만 놈의 호령 인사에 놀랐는지, 그들은 들은 척도 않고 사라져선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가소로웠을 것이다. 기름때와 먼지로 사람 같지 않게 생긴 내게 무슨 말로 수작을 걸 가치를 느꼈으라. 저 사람들 별로 미워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잇살 먹은 얼굴에 초등학생처럼 가슴마다 사람 얼굴이 그려 진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우습기보다 차라리 내가 민망해진다. 옛날 JSA에서 저 친구들과 3년을 같이 지내며,
"바보들아.., 너도 배지 속 그 사람처럼 사람이야... 정신 차려, 인마!"
하고 놈들에게 눈앞에서 달려들곤 했던 간 큰 시절이 기억난다. 아무튼, 외제 수입은 다 사람들 정신을 나가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외제 사상 수입을 잘못하는 것만치 사람을 얼빠지게 하는 것도 없으리라.
몸을 씻고 다시 내려와 저녁 파티 참석 차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까 그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세 명의 남자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등줄기에 땀이 나며 순간 제롬의 손을 잡았지만, 하얀 얼굴에 세련된 옷매무새가 우리 대사관 사람들이었다. 영사님과 참사님이 나를 맞으러 모두 나와 주신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우리 사람이냐.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했다. 내 얼굴도. 옷도 사람 꼴이 아닌데 그대로 대사관으로 가자신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관저로 들어서는 나를 대사님이 정원까지 나와 맞으시는 첫 마디...
"우선 좀 씻는 것이 좋겠소? 무사히 잘 오셨소...!"
 내 꼴이 참으로 말이 아닌가 보다. 관저 목욕탕에서 영사님이 손수 더운물을 채워 주셨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관저 텃밭에서 가꾼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 돼지고기 김치찌개..., 쌀밥. 낙타처럼 속절없이 굶어 온 나는 지금 체면이고 뭐고 없다. 대사님, 사모님이 애처로웠는지, 밥 많으니 천천히 먹으라 하신다
유종현 대사님께서는 마침 이 파리-다카르 랠리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고, 언젠가는 한국 사람이 이 경주에 참가 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며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김치와 밥에 빠져있던 내가 다음엔 꼭 사륜구동 한국 차를 만들어서 오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내년 우리 한국 차로 왔을 땐 온 대사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수백 km나 앞서 마중을 나오시겠단다. 자랑스러운 조국... 인정 많은 사람들, 우리만이 통할 수 있는 마음속 우리 말... 대사 사모님이 김치 깍두기도 한 봉지 싸주셨다. 오늘은 복 터진 날, 못난 놈 처갓집온 날이다.


밤 11시 30분. 밤이 늦은 시각인데 대사관저 밖 다른 곳에서 우리 교포들이 나를 위해 환영회를 한다고 모여있다고 한다. 내일 출정을 위해 잠을 재워야 한다고, 못마땅하신 듯한 대사님 눈치를 뒤로하고 우리는 한국 노래를 신나게 홍얼거리며 이곳의 의료 영웅이신 김00 박사님 집으로 어울려 갔다. 박사님께선 나를 얼싸안고, 태극기를 붙인 나를 TV에서 보았는데 한국인 처음으로 이 대회에 참석하는 나를 보고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났노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고마울 따름인데 말이다. 환영회 음식과 케이크를 준비하는 동안 김 박사님은 즉석에서 날 검진하며 세세히 물으시곤 몇 가지 비상약을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촛 불앞에 둘러섰다. 자정이 넘은 아프리카의 한밤. 장도의 무운을 빌어주는 수많은 촛불의 케이크 앞에 둘러선, 일렁이던 정겨운 얼굴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촛불에 그네님들 적셔진 눈물이 내 눈을 흐리게 했다. 나는 밤이라도 새고 싶었지만, 아침 출정을 위해 그곳을 나섰다. 내 목구멍에서 달빛을 타고 아리랑 가락이 흘러나왔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나를 호텔로 데려다주러 따라나선 영사님도 함께 불렀다. "아리랑 아라리오..." 애절한 가사가 그의 입속에서 밥 티 흘리듯 울먹이며 흘러나왔다. 멀고 먼 곳, 기쁜 우리만의 만남, 아프리카의 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하리.


Dutch Dealer 팀의 주자들. 모래로 분탕질을 했지만 아직은 건강한 웃음을 보인다.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 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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