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존엄을 껴안는 시, ‘버려진 신발’에 담긴 윤리적 상상력

버려진 신발
권영숙
헌옷수거함 위,
한 켤레씩 나란히 앉은
털신 두 짝
"버려진게 아니야 남겨졌어"라고 했다.
춘자가 왜 우리를 두고 갔을까
새것도 헌것도 아닌 몸
구겨진 데 하나 없고
정든 흔적조차 말끔한데
여름이 와서 숨이 막혔을까
신발장 틈이 좁았던 걸까
우리가 그녀의 발을
불편하게 했던 건 아닌지
눈 내리던 언덕길,
포근히 안아주던 발끝의 기억
분명 사랑이었다
비바람 사흘
수거함 곁에 웅크린 채로
생의 다음 장을 기다리던 어느 날
봉구네 아지매가
“아이구, 멀쩡하네
발에도 꼭 맞고, 참 예쁘다”
웃으며 품에 안는다
털신 두 짝,
이젠 새 겨울을 맞이 할것이며
작은 발끝 하나 감쌀 따뜻한 임무를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계절이
우리에게 기꺼이 다가왔다.
<버려진 신발 > 시 평론
권영숙 시인의 시 "버려진 신발"은 버려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다시 쓰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켤레의 털신을 화자로 삼아 펼쳐지는 의인화로 존재의 재발견, 관계의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 재생의 윤리를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다
시 속에서 털신은 “버려진 게 아니야, 남겨졌어”라고 스스로를 호명한다. 이는 단순히 물건의 처지를 대변하는 말보다 수동적 처분의 대상에서 벗어나 능동적 서사의 주체로 사물을 전복시키는 선언처럼 울린다 즉, 신발의 존재가 쓸모를 잃었을 때조차도, 여전히 품고 있는 가치와 서사를 무효화할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시인은 사물의 운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잊히는 존재들, 혹은 스스로를 한계로 밀어넣는 이들에게 다시금 ‘가능성’을 묻는다.
인간 사회에서 ‘쓸모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노인, 장애인, 또는 사회적 소수자의 현실을 투영하는 메타포로도 읽힌다. 시는 ‘털신’을 통해 존엄이 ‘유통 기한’에 따라 정해지는 사회에 대한 조용한 저항으로 보인다.
이런 재생의 감각은 권영숙 시인의 정신 세계와도 맞닿아 있는걸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봉사 활동을 실천해온 시인의 윤리적 감수성과 인간 중심의 시선은, 시 속에서 ‘낡은 신발’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서사로 정교하게 변환된다. 봉사는 버려진 것을 줍는 일이 아니라, 버려졌다고 여겨지는 존재 안에 남은 빛을 꺼내어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발끝 하나 감쌀 따뜻한 임무를 / 다할 수 있다는 것을.” 털신의 기능으로의 복귀보다 인간의 존엄은 쓸모와 무관하게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 그것이 시 전편에 관류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봉사의 언어를 시적 언어로 변환한 시도라 할 만하다. 눈 내리던 언덕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 언젠가 안아주던 발끝의 감각은 모두, 존재와 존재가 어떻게 서로에게 사랑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으로 사물에 깃든 정조와 애틋함을 시간이 흐르더라도 삶의 ‘다음 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학을 제안한다. "또 한 계절이 / 우리에게 기꺼이 다가왔다"는 구절에서 느껴지는 환대와 희망은, 버려짐의 시간조차도 누군가의 손길로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신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결국 "버려진 신발"은, 존엄의 복권, 재생의 윤리, 그리고 사랑의 회복을 동시에 그려내는 시이다. 권영숙 시인의 시선은 사물의 운명과 인간의 존재론적 외로움까지 끌어안으며, 시를 삶의 봉사처럼 실천해낸다. 그녀의 시에서 ‘당신은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다시 품을 것인가.’를 되묻는 시간의 기록과도 같다. - 평론 최용대-
{ 요약 프로필 }
권영숙 / 안동 거주
안동 권씨 검교공파 34세손 마지막 종녀
자랑스런 경북도민상
한식대첩 경북 대표 / 전통주 최우수상
문학과예술 최우수 시인상외 다수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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