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보르도」프랑스 파리와 보르도를 여행하며 기록된 이 여정은 풍경과 음식, 사람과 날씨 속에서 묻어나온 삶의 리듬을 섬세하게 복원해 낮의 어색함을 밤의 야경이 녹이고, 소소한 까눌레 한 입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순간들. 조세핀의 글은 낭만과 피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감정 지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 당신의 기억에도 리마인드 한 잔을 건네는 여행기가 될 것이다.[한국매일뉴스/이원희 기자]
리마인드 보르도 /조세핀
몇 해 전이었다. 보르도로 와이너리 투어를 떠났다. 우리는 마침내 낭만의 도시 파리에 발을 디뎠다. 오후 5시 30분,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복잡한 공항을 뒤로한 채 우버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낯선 풍경들을 바라보며, 몽파르나스역 근처의 작은 호텔 아라 빌리드 아티스트로 향했다. 긴 비행의 여파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어색한 공기가 차 안에 감돌았다.
그때였다. 창밖으로 웅장한 개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보지 못했을, 밤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개선문의 불빛은 어둠을 밝히며 우버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 사이의 냉랭한 기운을 녹여주었다. 잠시 후, 멀리서 반짝이는 에펠탑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야경이 압도적"이라는 말을 첫날부터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에펠탑의 황홀한 모습은 모든 피로와 불편한 감정들을 잊게 할 만큼 충분했다.
프랑스에서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저녁 8시 30분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호텔을 나서 밤거리를 걸었다. 호텔에서 불과 50미터 정도 걸어 나왔는데 펍이 즐비했다. 젊은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가득했지만 14시간의 비행이 남긴 피로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펍에 들르는 것을 포기하고, 모노프릭스 마트에 들러 와인과 치즈를 샀다. 숙소에서 가볍게 한 잔 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바로 잠이 들었다. 아담하지만 깨끗했던 숙소. 파리의 첫날밤은 그렇게 설렘과 피로가 뒤섞인 채 깊어갔다.
몽파르나스역에서 파리 남쪽에 있는 보르도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아침 9시 11분 기차가 예약되어 있던 우리는 미리 가서 발권을 하고 기다려야 하기에 서둘러 나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버를 타면 3분 걸리고 비용은 만 오천원 걸어서는 6분, 우산을 쓰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 7시가 채 되지 않은 거리는 어둑했다. 맞은편에서 키 큰 남자 셋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오싹했다. 무사히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보드도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창밖에 펼쳐지는 이국의 낯선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기에 충분했지만 우리는 이내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새 보르도역 도착해 있었다.
“와~~~신이시여 왜 이리 늦게 저를 이곳에 보내셨나요.” 호텔로 가는 도중에 찬사와 찬미를 아낌없이 보내고 또 보냈다. 우리는 보르도 중심가에 있는 콩티 호텔에 도착했다. 키 작은 프랑스 여인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우리를 반겨 주었다. 체크인을 3시에 해야 하기에 잠시 짐을 맡기고 주변을 걸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행복하여 정신을 놓을 뻔 했다. 고전적인 건축미에 압도 되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어젯밤 파리와 달리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까눌레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까눌레 본고장인 보르도에서 까눌레와 에스프레소를 함께 맛보았다.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쫀득함의 풍미가 섬세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생떼밀리옹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보르도에서 생떼밀리옹까지는 한 시간 남짓 가야했다. 우리를 포함해 열세 명이 버스에 탔다. 우리 말고는 모두 유럽인으로 보였다. 흰머리가 잘 어울리는 중년의 남자가 불어와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생떼밀리옹의 역사와 지금 가는 와이너리에 대해 말이다. 창밖에서는 세차게 비가 내렸다. 빗줄기 사이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포도나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조세핀 / 시인. 칼럼리스트.기자
약력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6년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
시집 『고양이를 꺼내 줘』 (2019년)
『에스메랄다와 춤을』 (2023년)
웹북 <새벽 뉴스>가 있음
시산맥 호남지부 회장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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