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 산문 한 편 ❷

박상봉 기자

등록 2025-08-05 12:18

  시 | 우엉잎


  박상봉


  우엉잎 쪄놓았다며

  가져가 쌈 싸먹으라고

  어머니 전화하셨다

 

  오래전 아버지 떠나신 집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

 

  어머니 집에 가려면 산 하나 넘어야 한다

  비 오는 날 학산 넘어간다

  받쳐 든 우산 속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양은솥에 우엉잎 찌는 소리 같다

 

  갈 때마다 얼갈이배추며 절인 고추,

  깻잎장아찌 따위 한 보퉁이 챙겨주시는

  세상에서 손이 제일 큰 우리 엄마

 

  손바닥 위에 가득 펼쳐놓고

  자글자글 된장국 끓여 쌈 싸먹는 저녁

 

  밥 한 숟갈 끌어안은 구수하고 쫄깃한 우엉잎

  영락없는 울 어무이 젖 맛이다

 

  ㅡ박상봉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곰곰나루, 2021)  ‘우엉잎’ 전문


산문 | 우엉잎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산을 넘는다. 비 오는 날 학산을 넘는 길, 우산 속으로 스며드는 빗소리가 양은솥에 우엉잎 찌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것은 곧 어머니의 부엌소리요, 기다림의 소리다.


아버지 떠난 집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아들이 올 때마다 얼갈이배추, 절인 고추,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을 한 보퉁이 챙겨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손은 어머니 손이고, 가장 깊은 맛은 ‘밥 한 숟갈 끌어안은 우엉잎’의 구수함이다. 그 맛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젖 맛이다. 마치 신이 내려준 ‘만나(manna)’와도 같은 것이다.


중복에 어머니 집에 달려가 전복 삼계탕을 끓여 대접했다.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 깊은 주름 하나하나에는 당신의 인생사가 결처럼 고여 있었다. 선명한 이마의 주름은 풍상을 견뎌온 이의 강인함을 말하고, 눈가의 잔주름은 말없이 살아온 곧은 성품을 말해준다.


어머니의 얼굴은 주름으로 엮인 고운 그물이다. 말 없는 그 주름은 사실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 “아이들은 잘 자라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 말로 다 묻지 않아도, 그 모든 물음은 주름의 무늬에 새겨져 있다.


문인수 시인의 표현처럼, 어머니의 주름은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다. 어머니 이야기야말로 진짜 이야기다.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은 귀가 아닌 눈으로 듣는 말씀, 바로 달빛의 언어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을 본다. 어느새 세월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주름진 얼굴은 시골 마당의 지푸라기처럼 얽히고설킨 삶의 증표다. 나는 다짐한다. 당신처럼, 주름이 곱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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