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둠스데이 / 문정영

이원희 기자

등록 2025-08-07 14:09


시산맥 문정영 발행인

술을 빌려 말하고, 사랑을 빌려 침묵하며,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놓아보내는,  이 시는, ‘불안한 공기를 뱉으며’ 살아내는 우리 모두를 위한 문장의 처방일 수 있겠다.문정영 시인의 신작 시집 "술의 둠스데이"는 삶과 사랑 사이에서 건져 올린 내밀한 고백이다. 술잔 속에 가라앉은 말들, 다 마시지 못한 관계의 찌꺼기들이 시인의 언어로 새롭게 발효된다. 이 시집은 ‘당신’이라는 이름을 술병에 담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따뜻하고 단단한 시편의 기록이다. [한국매일뉴스/이원희 기자]




술의 둠스데이





  나는 매일 술을 조금씩 먹고 자랐다

  서른 마흔 그 이상 나이를 먹으면서도, 좁은 이마에 띠를 두르고 달리기하면서도

  술병 뒤에 숨어 먹거나 독작하였다

  어떤 것이 사라질까, 두렵지 않다 술잔에 이야기하였다

  폭음을 싫어한다는 말에 꽃잎이 혼자 웃었다

  지구의 종말은 비둘기가 먼저 알 거야

  뱉어놓은 술 찌꺼기를 가장 많이 먹는 짐승은 위대하니까

  간에서 자라는 물혹들이 가끔씩 물었다

  내가 자란 만큼 술은 사라졌는가, 아니 빙하가 녹는 속도를 묻는 게 더 빠를지 몰라

  나는 매일 불안한 공기를 뱉으며 키가 줄었다

  내 몸속에 들어와 숨쉬기 곤란한 질문이 이별이었을까

  내가 놓아버린 저녁을 감싸고 있는 술잔들이 따듯해졌다

  이제 좀 더 놓아버릴 것들을 찾아야겠다고 실언했다

  더는 당신이라는 말을 술병에 담지 않겠다고

  자정 지나 혼잣말하곤 했다



 

* 문정영 약력/ 서울 거주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두 번째 농담』 『술의 둠스데이』

계간 『시산맥』 계간 『웹진시산맥』 발행인. 동주문학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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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의 시는 삶의 찰나를 응시하며 쓴 서정적 이야기다. 혼잣말이다. 따뜻한 물음이고 뼈 아픈 실언이다. 그는 기억이나 감정을 날실과 올실 삼아 삶의 비밀을 직조한다. 어디에도 거짓과 허장성세가 없다. 올곧고 정직하다. 「저어, 저어새」 「탄소발자국」 같은 시는 깊은 관조의 시선이 도드라진다. 시집에는 이런 매혹적인수작들이 풀숲에 머리를 처박은 꿩같이 숨어 있어 읽는 기쁨을 선사한다. - 장석주(시인·계간 『시산맥』 주간)

 

 


시집 『술의 둠스테이』는 편편이 사랑이다.

거의 전편이 사랑에 관한 탐구이자 언어적 좌표다.

필연적으로 시는 사랑일까?

“사랑은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라고 믿는 시인은

마침내 “마지막 사랑을 목숨으로 기다려야겠다”라고 노래한다.

-김이듬(시인·계간 『웹진시산맥』 주간)

 

 

문정영 시인을 오래 곁에서 지켜보며 내가 얻은 단어는 ‘어질다’였다. 여러 사람을 살피고 돌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어진 이, 헤아리고 살피는 사람의 문장은 단단하고 깊고 다정하다. 곧고 순일한 마음은 멀리, 또 깊이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문정영 시인에게서 배웠다. 어진 이는 저어할 줄 알기에 “따듯한 곳으로 슬픔을 옮기”(「저어, 저어새」)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시인의 성정을 닮아 편안하고 선선하여서, 곁에 두고 오래 마음을 기대고 싶은 시집이다.

- 이혜미(시인·계간 『시산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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