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 말복
박상봉
발아래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날이다
주머니 속에 감춘 우울 만지작거리는 날이다
큰 잎사귀 위에 잠시 앉아 쉬기도 하는 날이다
아득했던 소식도 쉽게 찾아오는 날이다
약속 없이 애인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덥거나 뜨겁거나 한 일을 잊고 바쁘게 움직이기도 하는 날이다
땀으로 목욕한 듯 등판이 칙칙 달라붙는 하루
땡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쥐덫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다
목구멍 깊숙이 새초롬한 사과꼭지 하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철커덕 발목 걸려들고 싶은 팜므파탈이다
주릿대 꽁꽁 묶인 그리움
곰삭아 찌찌 지린내 나는 돼지부랄이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성스러운 밤이 오기도 전에
찔끔 오줌부터 지리는 견딜 수 없는 말복이다
| 산문 | 말복
내일이 말복이다. 복날의 복(伏) 자는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복날을 보신탕 먹는 날이라고 농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음양오행에서는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로 본다. 여름의 뜨거운 화기(火氣)에 눌린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초복ㆍ중복ㆍ말복에 엎드리고 나면 여름은 지나간다.
지금은 삼계탕이 복날의 대표음식이지만 옛날의 복날 대표음식은 보신탕이었다. 예로부터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개고기를 즐겨 먹는 풍습은 지혜롭게 여름을 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쉽게 지치게 되는데 이럴 때 몸 보신용으로 개고기를 먹으면서 체내의 부족한 기운과 잃었던 입맛을 북돋우고 체력과 면역력을 높이기도 하였다.
개고기는 조선시대의 평민들이 자주 먹던 보양식으로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 먹을 것이 극히 귀했을 때 많이 먹었다.
게다가 여름처럼 더워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원이 필요했는데, 소는 농사일에 필요했고, 돼지는 잔칫날에나 잡는 귀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특히 서민들이 고기로 먹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은 개나 닭이었다.
특히 탕으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 개였기 때문에, 개장, 혹은 개장국은 곧 탕을 대신할 정도로 흔하게 쓰였다. 육당 최남선이 저술한『조선상식(朝鮮常識)』에 보면 보신탕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쇠고기로 끓인 육개장을 먹으며 여름 무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지금은 개는 식용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많이 늘어나면서 보신탕의 대체제로 흑염소탕이 각광받고 있다. 개고기를 팔던 식당들이 염소고기로 바뀐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기의 맛도 개고기와 비슷하면서도 호불호를 적게 타기 때문에 가격이 기존의 보신탕보다 훨씬 비싸지만 찾는 사람이 늘어 흑염소탕은 요즘들어 홈쇼핑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인기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개는 가축 1호로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고 가장 일찍이 인간의 품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같이 희노애락을 나누며 살고 있다. 애완견에서 이제는 당당히 반려자로 신분이 격상되어 지구상에 그 어떤 동물보다 그 지위와 품위가 당당해졌다.
집에서 개를 키워본 건 초등학교 때로 아주 먼 기억 속에 남아있다. 털이 거칠어 만지고 싶지 않았지만, 머리 위에는 유독 부드러워 나는 머리만 쓰다듬었다.
이름이 해피였고, 하얀 멍멍이였다. 진돗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귀가 우뚝 서 있고 제법 잘생긴 편이지만 혈통을 알 수 없는 잡종견이었다. 눈은 검다 못해 새까맸다. 샛별처럼 눈이 초롱초롱하고 반짝거렸다. 속눈썹이 길고 쌍꺼풀이 있어 어찌나 이뻤던지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의 애완견처럼 방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개가 아니라 마당가에 묶어놓고 키운 똥개였다. 순하디순한 순둥이 착한 개여서 들로 일하러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이 말라 물이라도 마시러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수돗가로 들어와도 짖지도 않고 엄마의 인심을 닮아서인지 펌프질해서 시원하게 마시고 가라는 듯 다리 펴고 편안히 바라만 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아무나 보고 꼬리를 흔드는 그런 지조 없는 개가 아니라 주인의 말에 순종하며 부르면 언제든지 와서 납작 엎드리던 충견이었다. 개들도 치매나 건망증이 있는 건지 어느 여름날 집을 나간 해피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개장수가 몰래 데리고 갔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개를 잃고 나서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했다. 어릴 때 개가 남긴 아픈 추억이 상처가 되어 가슴 한켠에 옹이로 박혀 있었다. 나중에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이 외며 “다 잘될 거야, 행복할 거야”라며 반복하는 바비 맥퍼린의 노래 「돈 워리 비 해피」를 듣게 되었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잃어버린 해피가 더 생각났다.
「돈 워리 비 해피」를 듣고 있으면 걱정도 근심도 다 사라지는 것만 같다. 아픈 기억도 잊혀지면서 곧 행복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한 환상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 때문에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있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박상봉 시인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박상봉
기자
헤드라인 뉴스
-
김건희 “다시 내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변호인에게 토로
김건희 “다시 내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변호인에게 토로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4일 특검 조사를 받는 도중 휴식 시간에 변호인들에게 “내가 다시 내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
-
《인문사회과학칼럼》 사고와 판단의 유연성
사고와 판단의 유연성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성향이 있다. 이것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고 이것은 현대의 심리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인지 편향의 심리를 인지부조화이론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뇌인지심리학자인 이상아 서울대 교수는 ‘마음의 편향은 강력한 본능
-
[칼럼]속옷 차림의 권력과 거울 앞의 국민
반영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법의 손길에 끌려갔다. 수의를 벗은 채 속옷 차림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체포를 거부한 것과, 이어진 강제 수사에서 의자에 매달리다 떨어져 부상을 입는 모습이 전 국민에게 보도됐다. 오늘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법정에 선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구치소에서의 신체검사, 카키색 수의, 수용번호,
-
《속보》외신들 "한국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동시 구속" 속보 타전
외신들 "한국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동시 구속" 속보 타전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구속된 가운데 외신들도 '한국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동시 구속'이라며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일본 NHK 방송은 13일 "윤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여사가 주가 조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
‘《사설》순국선열’ 빠진 광복 80년
‘순국선열’ 빠진 광복 80년대통령이 해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로하기 위해 광복절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오찬을 하는데, 올해는 순국선열유족회 회원은 회장을 포함, 모두 참석을 불허하고 애국지사 후손 위주 광복회 인사 등만 초청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가보훈부 장관이 담당 직원을 유족회에 보내 양해를 구했다고 하지만, 유족회 측은 &
-
《사설》한국을 떠난 것, 새로 만들어 갈 것
한국을 떠난 것, 새로 만들어 갈 것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세계적 자유무역 환경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이웃에는 별 제약 없이 우리의 중간재 상품을 바리바리 실어 나를 수 있었던 중국 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이 "이제 자유무역 시대는
-
李, 조국·정경심·윤미향·최강욱 등 광복절 특별사면
李, 조국·정경심·윤미향·최강욱 등 광복절 특별사면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오후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포함된 8·15 특별사면안을 의결했다.이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사면권 행사에서 ‘정치인’을 대거 포함시켰다. 이번 특사 명단
-
《사설 》 당은 나락인데 尹과 전한길만 보이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은 나락인데 尹과 전한길만 보이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국민의힘이 22일 새 당대표를 선출한다. 계엄과 탄핵, 대선 패배를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당을 추스를 리더십을 선택하는 자리다. 하지만 기대는커녕 실망과 우려가 앞선다. 전국을 돌며 분위기를 띄우는 합동연설회가 8일 시작됐지만 후보들의 비전과 역량은 고사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만 보
-
《사설》'김건희 특검'은 그때 尹에게 기회였다
'김건희 특검'은 그때 尹에게 기회였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귀한 정치 자산을 김건희 특검을 막는 데 소진하고 무너졌다. ‘법과 원칙’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무너진 공정(公正) 회복’ 등은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이 기대했던 가치이자 그의 핵심 정치 자산이었다. 이 가
-
광복 80주년 8.15 전야문화제 -호암예술관-
호암예술관 공연 장면충주 호암예술관 충북 충주시 호암예술관이 8월 14일 저녁, ‘나라를 되찾은 지 80년, 하루 전 날’이라는 부제로 열린 전야문화제는 ‘충주시민역사문화포럼’과 ‘흥사단 충주지부’가 주최하고 ‘충주시소상공인연합회’와 ‘중원문화정책포럼&
-
《사설》 김여정 "확성기 철거 없다"… 대북 조급증이 부른 민망한 해프닝
김여정 "확성기 철거 없다"… 대북 조급증이 부른 민망한 해프닝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확성기를 철거한 적이 없으며, 의향도 없다"고 14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측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나온 반응이다. 북한 반응에 성급히
-
인천광역시교육청, '학생 개별관리카드 온라인 서비스' 시범 운영
인천광역시교육청, '학생 개별관리카드 온라인 서비스' 시범 운영인천광역시교육청(교육감 도성훈)은 늘봄학교 학생 안전관리를 위해 '학생 개별관리카드 온라인 서비스'를 8월 18일부터 56교에 시범 도입한다고 밝혔다.이번 서비스는 앞으로 아동별 늘봄 과정 참여 현황과 귀가 정보를 온라인으로 수집·관리해 종이 문서 사용에
-
[PRNewswire] 넥스티어, 2025년 상반기 견조한 실적 발표
[PRNewswire] 넥스티어, 2025년 상반기 견조한 실적 발표-- 중국 OEM•기술 리더십•전략적 확장으로 성장 가속오번힐스, 미시간 2025년 8월 14일 /PRNewswire=연합뉴스/ -- 넥스티어 오토모티브(Nexteer Automotive, HK 1316)는 오늘 2025년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며 시장 평균을 상회하는 매출
-
《사설》"노란봉투법 멈춰달라" 국회의원 298명에 편지쓴 손경식 회장
"노란봉투법 멈춰달라" 국회의원 298명에 편지쓴 손경식 회장 이재명 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친노동 드라이브'를 본격화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13일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관계법 확대 적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노동시간 단축 등 강도 높은 친노동 정책이 포
-
[칼럼] "초등생에게 인문학을 허하라 " -이원희 기자-
교실은 쉼 없이 굴러가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자주 멈춰 선다. 질문은 속으로 삼켜지고, 외워야 할 정답만이 칠판을 뜨겁게 달군다. 정답을 맞춘 아이는 칭찬받고, 의문을 품는 아이는 뒤처진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로부터 '사유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육이 먼저 선행되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교육이란
-
[최용대 평론] 김은경시인의 '몸 예보' 몸의 기상학
시인 풀꽃 김은경몸 예보 / 김은경손등이비의 음절에 젖는다길가에서,창가에서,화단 한 귀퉁이에서대지의 답답함을빗질하듯 씻어내고,꽃의 허리를곧추세운다비를 점치던할미의 묵은 예보가찌부둥한 나의 허리에닿던 순간부터,나는 천기를 누설하기시작했다아~이~고~로 시작돠는순도 백 퍼센트자연 만상의 내림이었다마음 한쪽은여전히쨍쨍한 햇살 속에살고 있음에도...시/ 몸 예보김은
-
《인문칼럼》인문학에서 가을의 낭만 찾아보시라
인문학에서 가을의 낭만 찾아보시라사회적,경제적,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리적 우울감은 삶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삶의 주도권과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은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문제와 갈등에 부딪히고, 정답을 갈구하며 노력해왔다. 애석하게도 삶에는 정답이 없다.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생
-
《인문사회칼럼》 너와 나` 묶어줄 민족주의
너와 나` 묶어줄 민족주의한국사람들의 심성 가운데는 묘한 극단성이 있다. 한번 친해지면 간이라도 내어줄듯이 좋아하다가도 한번 싫어지면 세상없는 원수를 대하듯이 미워한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한번 삐뚤어지면 일평생 섭섭했던 감정을 다 노출시켜서 철저한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평생의 친구를 쉽게 잃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이러한 현상은
-
대구경북작가회의, 제31회 여름문학제 시민과 함께
대구경북작가회의(회장 신기훈)가 주관한 올해 여름문학제는 피폭 80주년을 맞아 원폭문학과 원폭 피해자의 삶을 알아보는 알찬 시간을 가졌다. 지난 1일 대구 중구 동성로 혁신공간 바람 상상홀에서 ‘원폭문학, 새 길을 모색한다’를 주제로 제31회 여름문학제를 시작한데 이어 9일에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과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