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거라
쉬지 말고 끝까지, 물처럼
느리게 사는 것의 힘
박상봉(시인·중소기업 성장컨설턴트)
소설가 한수산은 자신의 산문집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에서 이렇게 썼다.
“별을 바라보듯 그렇게 꿈꾸면서, 느리게 가거라. 살아가는 일에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느리게, 그러나 쉬지 말고 끝까지 가거라. 물처럼.”
이 짧은 구절은 바쁘게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 조용히 내려앉는 한 줄기 바람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하루 끝, 침대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또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하는 우리들에게, 그 말은 질문처럼 들려온다.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속도의 시대를 살아왔다. 빠른 인터넷, 빠른 배송, 빠른 일처리, 빠른 성공, 빠른 관계…심지어 빠른 치유와 빠른 행복마저 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스케줄에 내몰리고, 어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과를 소화하며 ‘시간이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느린 것은 뒤처지는 것으로, 여유는 게으름으로 간주되는 사회. 우리는 언제부터 ‘느림’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빠르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삶의 의미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있고,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내면의 균형일지도 모른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멈춰서 쉬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채로’ 끝까지 가겠다는 다짐이다.
빠르게만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사람들의 표정, 계절의 변화, 내 마음속 작은 진동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 모든 것이 속도에 밀려 소거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도시는 언제나 바쁘다. 거리는 차들로 붐비고, 사람들은 서로를 스치며 지나간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메시지 알림음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늘 한 발 앞선 정보를 쫓는다. 그렇게 도시의 속도에 순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삶이 기계의 부속처럼 느껴진다. 내 삶을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루틴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은 근심을 불러온다. 걱정, 분노,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피처럼 우리 안을 돌고, 몸의 기혈순환을 막아 결국 병이 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피로, 불면, 소화불량, 우울감은 정신의 속도와 육체의 리듬이 어긋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살아왔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자기만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다. 아침 햇살에 잠시 멈춰 눈을 감고, 커피가 식어가는 속도를 지켜보고,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런 느림이 쌓이면 마음은 한결 맑아진다. 성격은 온순해지고 표정도 밝아지고, 사고는 자유로워지고 가슴은 사랑으로 차오른다. 느림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고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이라는 말들도 결국은 같은 본질을 향하고 있다. 속도와 효율 중심의 문명에 대한 반성, 기계화된 삶에서 인간성을 되찾고자 하는 몸부림. 이 모든 것이 ‘느림’이라는 단어 안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성찰의 미덕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멈추면 뒤처질 거야’, ‘남들보다 늦으면 안 돼’, ‘오늘 끝내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잃을까? 오히려 삶의 중요한 것들은 천천히 갈 때 더 분명하게 보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풍경을 놓친다. 하지만 시속 30km의 자전거를 타면 길가에 핀 들꽃, 창문 넘어 웃는 아이, 벽에 걸린 오래된 간판 하나까지 보인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더 많이 본다는 것이고, 더 많이 느낀다는 뜻이다. 삶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삶을 더 깊게 경험하겠다는 의지이다.
사는 것이 버겁고 일이 고단할수록, 느리게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유를 잃지 않는 삶,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강한 힘이 아닐까.
하루가 버겁다면, 오늘 다 못하면 그냥 내일 하자. 급할 것 하나도 없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면 이미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별을 바라보며, 물처럼, 꿈꾸듯.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끝까지 가보자.
박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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