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의 ● 시 한 편 / 산문 한 편 ❺

박상봉 기자

등록 2025-08-16 21:51

| 시 | 향기


박상봉

 

찻숟가락 하나 가득

개미를 퍼담아 잔 바닥을 채우고

주전자 속 끓는 물을 붓는다

 

순식간에 녹아버린 개미를

맛있게 타 먹는 저녁

주전자 속 개미가 끓는 소리 듣는다

 

나는 예전에 개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본 적이 있다

새콤달콤한 커피 향기

처음 맡아본 날이다

 

한 숟가락 설탕을 넣기 전에는

내 삶도 진한 향기를 지녔다는 사실

알게 된 날이다


_박상봉 두 번째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 중에서


 | 산문 | 향기


삶의 바닥에는 늘 무언가가 깔려 있다. 시인은 그 바닥을 ‘개미’라 부른다. 끓는 물을 부어버리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작은 생명들. 그 장면이 잔 속에, 주전자 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겹겹이 남는다. 그것은 향기를 위한 희생이며 동시에 향기의 탄생이다.


나는 이 시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부엌을 떠올렸다. 찻숟가락 하나로 설탕을 푸던 어머니의 손길, 그 달콤한 입김 같은 향기. 그 앞에 앉아 나는 설탕을 기다리는 아이였다. 시인은 설탕이 들어가기 전에도 삶은 이미 진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우리는 늘 더 달콤한 무언가를 찾는다. 한 숟가락 설탕, 한 조각 케이크, 혹은 한 번의 축하 인사. 그러나 시인은 돌연 말한다. 설탕 이전의 순간에도 삶은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그러니 우리 삶의 향기는 ‘더하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음’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네 삶은 진한 향기를 지녔다. 신간 시집을 내고 나면 향기 짙은 답신을 많이 받는다. 직접 기른 복숭아도 보내오고 예쁜 축하 카드와 시를 적은 글씨와 문자로 메일로 보내온 보석 같은 축하의 문장들이 답지하는 것이다. 


시집을 보내고 난 뒤 찾아온 선물들은 모두 향기의 다른 얼굴들이다. 복숭아 한 박스가 계절의 향기를 가져오고, 카드 위의 글씨가 사람의 마음 향기를 퍼뜨린다. 떡 선물 세트는 곡식의 향기를,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일상의 향기를. 작은 시집 한 권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향기의 문들을 열어젖히는지 신기하다.


시집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들은 종이 냄새 대신 ‘향기’를 기억한다. 종이에 새겨진 문장 속에 자신들의 기억과 체험을 녹여 넣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삶 속에서 다시 끓고, 녹고, 퍼져 나간다.


‘향기’라는 시 속의 개미는 불쌍한 희생물일 수도 있다. 시인의 기억 속에서 그것은 커피 향기의 은유다. 뜨거움과 고통이 향기를 낳는다는 사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우리의 삶 역시 개미처럼 수없이 끓임을 당하고 녹아내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묘하게도 향기가 피어난다.


투썸플레이스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 향기를 음미하는 지금, 시인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잔 속에서 사라져간 개미의 기억과,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의 향이 교차한다. 그 순간, 시인의 삶은 하나의 원을 그리며 닫히고 다시 열린다.


나는 이 시를 삶의 알레고리로 읽어주기를 원한다. 우리 삶은 ‘개미를 퍼담은 숟가락’ 같은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뜨거운 시련을 거칠 때 오히려 향기가 난다. 설탕을 기다리지 않아도, 향기는 이미 존재한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향기로운 삶 속에 앉아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보내온 답장들은 사실상 향기의 또 다른 증언이다.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선물로, 또 다른 이는 말 없는 침묵으로 시인에게 향기를 돌려준다. 향기는 교환되는 것이고, 나누어질수록 더 진해진다. 이 교환의 연쇄가 문학의 진짜 생명 아닐까.


결국 ‘향기’라는 시는, 삶의 고통과 축하, 상처와 기쁨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한 잔의 커피 같은 것이다. 뜨겁게 끓어오르고,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은은히 남아 우리의 호흡 속에 스며든다. 향기는 시인의 손끝에서, 그의 시집에서 흘러나와, 지금 네 곁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국시』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오늘의 시』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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