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진영 정치에 가린 진짜 위험성
지난해 말 이래 여러 인물이 정치 무대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한덕수 김문수 전광훈 전한길 명태균…. 다른 편엔 이재명 김민석 강선우 이진숙 최동석 정청래 김어준 조국….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몇몇만 거명해도 머릿속이 꽉 찬다. 이들의 행보는 요란해 계엄, 탄핵, 조기 대선, 정권 교체, 조각(組閣), 윤·김 특검 및 구속, 특별사면, 국민임명식 등 굵직한 일들이 논란 속에 이어지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인물들로 인해 어떤 정책 쟁점이 나왔고, 어떤 국민적 담론·공론이 형성됐는지 확 떠오르는 게 없다. 정치판에 사람들이 들끓으며 큰일을 벌였으나 국민은 그들을 지켜보며 호불호(好不好) 감정만 냈을 뿐 정책 담론과 공론을 넓게 펼치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인물들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이나 비난은 집회 현장, 기사 댓글, 사회관계망(SNS) 등에 난무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 사회적 공론을 일으켰다고 볼 만한 정책 쟁점은 별로 없다. 어려운 중요 현안이 널렸는데도 그렇다. 대북·대중 안보, 대미 무역, 경기 부양과 물가, 재정 적자와 포퓰리즘, 일자리와 근로 환경, 기업 성장과 규제, 조세 형평성, 부동산 시장과 지역개발, 에너지와 기후변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젠더 평등, 이주민 대우, 초고령화와 연금, 인공지능(AI)과 산업 개편 등. 개헌, 정당 변혁, 검찰개혁과 같은 정치 구조적 쟁점을 빼도 시급한 현안이 이리 즐비한데 국민적 쟁점화와 공론화는 매우 저조하다.
이런 정치판은 하드코어 저질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온갖 특이한 인물이 예측 불허로 행동하고 파란만장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는 말초적 애증의 감정에 빠진다. 그러나 어떤 쟁점을 찾아 이성적 논의로 승화시키지는 못한다. 댓글, SNS에서 특정 배역을 일방적으로 욕하거나 칭찬하며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하는 게 전부다. 좋은 문학·예술 작품을 통해 감수성을 키우고 이성적 성찰을 기하며 사회 쟁점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듯이, 요란한 인물 난전(亂廛)에 쟁점 공론이 없다. 이 정치 상황은 우연한 결과가 아닐 것이다. 물론 친위 쿠데타, 탄핵, 조기 대선 등 정권 공고화 시도나 정권 교체에 직결된 돌발 변수들도 정치가 인물 위주로 가는 데 부분적 원인이 됐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으로, 정치인들의 교묘한 전략적 의도가 작용했을 것으로 의심된다. 이 의구심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달 반이 넘은 현시점에도 정책 쟁점의 공론화가 미미하고 여전히 인물 위주의 공방이 정치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서 커진다. 국민마저 정서적 양극화에 빠진 상황에서 정치인들로선 정책 쟁점의 진지한 국민적 공론화가 큰 반향을 못 얻고 반대쪽의 비판만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에 꺼릴 수 있다. 그냥 인물 중심적 정치로 가는 게 그런 위험을 피하고 또한 이미 한쪽으로 극단화된 자기 진영을 자극·결집하는 좋은 전략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쟁점 공론화를 피하고 인물들만 부각하는 전략은 편파적 감정싸움과 무조건적인 진영논리를 격화시킬 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어느 순간 특정 정책을 하향식으로 밀어붙이게 되는 폐단도 수반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국회의 압도적인 다수 정당의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특정 정책을 단기간에 입법화할 수 있다. 이미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양곡관리법 등 충실한 국민적 공론의 전개도 없이 다수의 힘으로 속전속결 처리했거나 처리하기 직전인 법안·정책들이 등장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적 공론 과정을 거친 후 쟁점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이상을 훼손하는 일이다.
여야의 조화로운 정치는 핵심 인물들의 행보와 광범한 국민적 담론·공론이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쟁점 담론만 있어서는 추진력이 약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핵심 인물들만 정치판을 요란하게 흔들고 국민적 공론이 실종되어도 양극적 적대감이 증폭돼 문제가 더 꼬일 테고, 결국 다수에 의한 하향식 밀어붙이기 국정 운영으로 귀결된다. 우리 국민은 무대를 독점한 정파적 인물들에게 낚여 넋을 잃고 쟁점의 공론화 없이 계속 끌려만 다닐 텐가.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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