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구호가 경제논리에 패배할 때
우리는 지금 정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라면서도 조금만 틈이 나면 정치 얘기를 한다. 그것이 싫어서 "나는 경제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선을 긋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세상 문제들이 다 이래저래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경제와 관련된 것들을 ①경제에 유의미한 현상 ②경제적 사건 ③경제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분류했다.
①은 정치 등 다른 부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도자가 훌륭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일할 동기를 자극하면 경제에 활력이 돈다든가, 정치권이 아귀다툼만 하면 국민이 절망하고 경제가 시들해지는 것 등이 포함된다. ②는 순수 경제변수들 간의 영역이다. 수요·공급 원리가 대표적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③은 경제가 정치·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분배 문제와 같이 경제활동 결과 내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정치적 문제가 된다.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이라면 세 가지가 다 포함된 정치·경제 프로그램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이 그 연계를 망각하고 경제를 다루다 낭패에 빠진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강남 중대형 아파트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불을 붙이자 재건축을 어렵게 만드는 대책을 내놓았다. 부자가 더 부자 되는 것을 막아 ①과 ③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②를 무시했다. 공급이 줄어드니까 가격이 더 올라갔다. 할 수 없이 금융 규제를 강화해 전체 수요를 줄이는 ②정책을 썼다. 그런데 이 정책으로 인해 부자보다 서민들이 더 크게 타격을 입었다. 결국 ③에서도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②를 무시한 채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놓았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부동산원 통계를 조작했다. 그래서 민간 통계로는 부동산 가격이 10%가량 상승했는데 공식 통계에서 1% 정도만 오른 것으로 나왔다. 소득주도성장 통계로 인해 통계청장이 경질되고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는 새 통계청장이 취임하는 분위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 외국산 수입을 줄이고 자국 제조업을 부흥시킨다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프로그램을 내세우고 있다.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①이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 결과 ③이 MAGA로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②에서 솔직하지 못하다. 관세 비용은 수입업자들이 부담한다. 부가세를 올린 것과 같은 효과다. 수입 가격이 인상되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금까지도 기자회견에서 외국 기업이 관세를 내는 것이라고 반복하며 물가에 영향이 없는 듯이 얘기한다. 고용통계가 나쁘게 나오자 노동통계청장을 경질하기도 했다.
현 정부는 아직 ① ② ③을 포괄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지난 주말 발표한 인공지능(AI) 투자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①과 ②에 대한 설명이 없다. 기업 옥죄기를 강화하는 정치 흐름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AI 투자가 잠재성장률을 그렇게 대폭 끌어올릴지 의문투성이다. 트럼프는 아무리 천방지축이라도 기업의 국내 투자를 끌어올린다는 성장 청사진은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기업 투자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① ② ③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싸한 정책이라도 '정치 구호'에 불과해진다. 그리고 그 구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 가지가 연결된 정치·경제 논리에 패배한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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