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 이은상의 「가고파」는 마산의 혼이지만, 정치와 무관심 속에 잊히고 있어 되살릴 목소리가 절실하며 예향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배성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가고파」는 창원특례시 마산 앞바다 합포만의 옛 풍경을 생생하게 담은 민족 서정의 결정체다.
바다와 하늘, 갈매기와 어선이 어우러진 장면 속에서 선생의 시는 오늘까지 살아 숨쉰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마산 상남동에서 태어나, 마산의 노비산에서 아호 ‘노산’을 얻었다. 이름과 시 곳곳에 고향과 바다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 그의 삶과 문학은 마산 전체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선생의 생가터에는 ‘은상이 샘’이라는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먼지 쌓인 골목, 발길 닿지 않는 그곳에서 문학적 유산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일부의 왜곡된 시선이다. 독립운동도 민주화운동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허구와 억지가, 선생의 업적을 가리고 있다. 친일 행적 프레임으로 그의 찬란한 삶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기록이 증명하는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해방의 해, 전라도 광양의 감옥에서 풀려난 선생의 흔적은 수많은 문서와 증언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창원특례시는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리거나 기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문화적 자산을 외면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조차 느끼게 한다.
올해 10월, 마산에서는 국화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왜 ‘마산가고파국화축제’가 될 수 없는가. ‘가고파’는 단순한 시 제목이 아니다. 마산의 정신이자, 국민 정서 속에 새겨진 고향과 그리움의 상징이다.
정치적 이유나 편향된 사고로 그 이름을 외면한다면,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문화적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마산 시민과 행정, 예술인이 함께 깨어날 순간이다.
마산은 예향(藝鄕)이다. 최치원에서부터 노산 이은상, 김춘수, 정진업, 이원수, 천상병, 창동허새비, 이수인, 문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이곳을 거쳐갔다. 그들의 숨결은 오늘의 마산에도 흐른다.
‘가고파’라는 단어 하나가 담고 있는 정서는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도시의 역사적·문화적 자부심과 맞닿아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은 황금보다 귀하다. 눈에 보이는 발전과 성장만 좇다가는 도시의 영혼까지 잃게 된다.
청사에서는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축제에서는 ‘가고파’의 이름으로 시민과 관람객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래야 마산의 문화적 자존심이 살아날 수 있다.
가을바람이 불면, 합포만의 물결 위로 노산 선생의 시가 떠오른다. 「가고파」의 여운은 단순한 향수나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사람,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적 다리다.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축제와 문화 활동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때, 마산은 진정한 예술의 도시, 예향으로서 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마산과 ‘가고파’가 함께 깨어나는 모습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편향과 무관심 속에 잊히게 둘 것인가. 소중한 문화유산은 결코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바람이 합포만 위로 불어올 때, 우리는 노산 선생의 시 속에서 고향과 그리움, 문화적 자긍심을 다시 만나게 된다. 마산의 가을은 그렇게, ‘가고파’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쉰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경남 창녕 부곡 출생(1963)했다. 1982년10월 ≪영축≫지『들길에서』외 2편의 詩 추천 데뷔했다. 2007년 계간『사람의 문학』김용락 교수(시인, 평론가) 詩 부문 추천 등단. 2010년 제8회『설중매문학』신춘문예 詩 부분 당선. 2007년 낙동강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 도서출판 성연『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이슬속에 바라본 세상』 출간. 현재 2008년 계간 詩와늪 창간부터 현재 제68집을 편집 발행했으며 도서출판 성연 대표.>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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