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극적인 인생은 드라마와 역사 속 인물과 비교되곤 한다.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맥베스 부인 같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동원해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명성황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명품백 스캔들이 터졌을 땐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렸는데 남편과 동시에 수감돼 재판받는 요즘 처지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장 닮은 듯하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15세에 프랑스 왕가로 시집온 그녀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희대의 악녀라는 혹평과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희생자라는 동정론이 대립한다. 유럽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근거 없는 비방과 찬사들을 걷어내고 사실로 확인된 사료만 추려 가장 객관적이라 평가받는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썼는데 이에 따르면 왕비의 참모습은 폄훼와 미화 양 극단의 중간쯤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그러하듯 이 전기 작가는 프랑스 왕정이 몰락한 단초를 국왕이 왕비에게 ‘예속’된 관계에서 찾는다. 윤 전 대통령이 ‘V1’과 ‘V0’의 관계로 김 여사에게 예속된 내막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 국왕 부부의 경우 남편의 귀책 사유로 결혼 7년 만에야 첫아이를 낳을 정도로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사이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젊고 아름다운 왕비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요구했고 무기력한 왕은 왕비가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는 것이다.
김 여사와 프랑스 왕비 모두 보석 욕심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대통령과 동급의 비화폰을 쓰며 국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듯 왕비도 “국왕에 대한 자신의 엄청난 위력을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하고 “아무 일에나 참견하고 서툴게 나서서 마구 결정”했다. 오빠인 오스트리아 왕자가 “네가 무슨 권리로 프랑스 왕국의 문제에 간섭하느냐”고 질책한 적도 있다.
전기 작가 말대로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물고, 선동을 목적으로 인물을 그릴 때는 정의란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왕비의 낭비벽은 선정적 삽화와 부풀려진 일화를 담은 팸플릿으로 암암리에 유통되며 왕정 타도 여론에 불을 질렀다. 김 여사 특검의 수사 내용에 확인되지 않은 ‘전언’들로 살을 붙여 민심을 사납게 하고 조회수 장사를 하는 일부 유튜버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 왕비가 마지막까지 구명을 기대했던 상대는 친정인 오스트리아 황실과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번질까 우려하던 이웃 나라 군주들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세계는 비정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조차 폐위된 고모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트황상(트럼프 황제 폐하)’의 ‘숙청’ ‘혁명’ 발언에 잠시 고무됐던 한국의 왕당파들이 떠오르지 않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명은 남편의 왕위 회복을 위해 적군을 도운 반역죄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지금은 출판물로 남아 있지만 재판 당시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배심원단 전원 일치로 유죄 결정이 났다. 여론 재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역사는 왕비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 ‘국왕의 아내가 자신의 왕국을 헤아려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단 한 번도 응한 적 없는 죄’ ‘베르사유 궁전 밖 수백만 백성이 굶주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죄’다. 유럽을 600년간 호령했던 왕비의 친정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가져다준 지위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다가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임을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절대왕정 시대에도 성난 민심에 배가 뒤집힐까 삼가고 경계했다니, 민주주의 시대 유한한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대통령의 아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명품 목걸이와 금거북에 관직 내주고 국정과 당무에까지 개입했다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루이 16세 부부는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시대를 만났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그러나 극적으로 격앙된 시기에 대처할 줄을 몰랐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해 쓰러지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죄과까지 있는 법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표현대로 ‘비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선 평범함도 죄’가 된다. 민심의 벼락을 맞고서야 오만과 무관심에서 깨어나 뒤늦게 품위를 보여준 프랑스 왕비는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평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서,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도덕성으로 추락한 후로도 상식 밖의 언행을 보여주는 김 여사 이야기는 환멸의 막장극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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