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맥] 해외 (호주) 문학 동인지 '캥거루' 연재 수필/ 숲의 노래, 생명과 공존 -안동환-

이원희 기자

등록 2025-09-04 21:51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두산에서 22년간 엔지니어로 일했고, 2006년 호주로 이주해 시드니와 멜버른의 숲속에서 나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10년 한국 『문학사랑』으로 등단했고, 현재 시드니 문학동인 캥거루에서 활동 중이다. 산문집으로 『중년, 담담하게 버티는』이 있고, 2024년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부문에 입상했다.

안동환 수필가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나는 매일 숲으로 향한다. 나무와 풀이 가득한 모든 숲이 일터다. 세상은 아직 잠에서 덜 깨어 고요하고, 신선한 새벽 공기는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한다. 편안한 마음이 녹아든 도시락과 함께 떠나는 출근길은 하루하루가 소풍이다. 수많은 생명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침 숲은 신비롭다. 소리가 없어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배가되고, 움직임이 없어 볼 수 있는 능력 또한 깊어진다. 평소에는 전혀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이른 시간 숲은 고스란히 드러낸다. 투명하고 눈부신 아침 햇살이 숲속 하찮은 풀 위로 내려앉으면, 그들 가까이 몸을 숙이고 눈을 감는다. 흙과 풀이 가진 익숙한 내음은, 새벽 공기와 함께 폐부 깊이 빨려 들어와 온몸으로 스며든다. 눈을 뜨고 젖은 풀잎과 나뭇잎을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본다. 빛과 바람에 실려 몸안으로 들어온 숲의 숨결은, 알 수 없는 내 안의 기운과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숲이 갖고 있는 무한한 에너지가 내 안에, 나는 그 안에 거하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한 그루 나무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자르지 않았다. 죽을 때도 숲으로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앉아 죽음을 맞이했다. 숲과 나무가 갖는 정신은 물론이고 자연의 품에, 치유와 생명조차 맡기고 의탁했다. 역사 속에서는 언제나 땅과 숲을 정복한 백인이 인디언들에게 승리했으나, 지구의 재앙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금, 역사 속 승리가 새삼스럽게 달리 다가온다. 자연과 삶에 대한 그들 방식이 귀하게 여겨진다. 인간에게 숲은 태고 이래, 언제나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과 같은 고대 종교는 아주 오랜 시간 자연과 인간을 같이 아우르며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숲과 인간의 아픈 이별은 창조주가 에덴동산이라는 완벽한 숲에서 인간을 내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 숲과 함께하는 신과 정령들을 향한 숭배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죄악시되기도 했다. 급기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과 문명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서 숲은 황폐해졌다. 지구와 숲이 갖는 긴 역사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말이다.

 

시드니에서 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숲속에서 특정 식물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이 대상을 위드, 잡초라 부른다. ‘잡초’라는 우리말이 농경지에서 자라는 농작물 이외의 잡풀로 인식되는 것에 반해, 숲에서는 좀 더 넓은 의미가 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인간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귀한 식물일지라도 위드가 된다. 어제의 네이티브(native, 토착 식물)가 오늘은 위드가 되기도 하고, 멜버른의 위드는 시드니에서 네이티브로 분류되기도 한다. 돈을 주고 사들여 열심히 뒷마당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 대개가 숲에서는 위드다. 건강한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위드를 죽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숲의 다양성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뽑거나 자르고 또는 약을 바르거나 뿌리고, 때론 불로 태우기도 한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부분 위드다. 사람 때가 전혀 타지 않는, 깊은 산속이나 오지에는 위드가 없다. 숲에 위드가 등장하는 것은 사람 때문이다. 인간 기준과 편의로 나눠진 위드와 네이티브의 운명은, 그래서 공평하지 않다. 어떤 나무를 위해 어떤 나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나무와 풀도 감정을 갖는 생명이다. 식물은 몸과 얼굴을 갖고 있으며 숨결조차 있다고 한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실험 사례에 의하면, 식물도 감정을 지니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인간들을 알아보고 기억하며 마음을 읽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에 사랑하는 손길과 눈길을 보내느냐 안 보내느냐에 따라, 잘 자라고 시들고 하는 차이가 나타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류를 측정하는 일반적인 실험 장치로, 식물에 닥친 기쁨과 고통의 순간 전류를 측정하면,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다. 간단한 실험으로 식물 감정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인간 지각 능력으로 식물 감정 표현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실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관여한다는 DNA. 식물 중에는 동물이나 심지어 인간보다도 DNA 수가 더 많은 것이 있다.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종족을 퍼뜨려야 하고, 모진 비바람에 견뎌야 하고, 온갖 동물의 공격에 살아남아야 하니, 얼마나 많은 지혜가 필요하겠는가. 동물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복잡한 유전자 메커니즘을 가져야 하는 식물이 오히려 한 수 우위임을 인정한다.

 

죽음 앞에 선 식물의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식물도, 정신을 지닌 생명체라 생각하며 진정한 위로를 전한다면, 고통 앞에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순리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록 죽일 수밖에 없는 위드일지라도, 따뜻한 마음과 다정한 눈길로 위로를 잊지 않아야겠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식물을 기어코 죽여야 한다는 굴레를 이젠 벗어나겠다. 위드를 제거한다는 것은 단지 끝나고 없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말한다. 그렇게 공존하는 세상이다. 나는 오늘도 따듯한 위로의 마음과 함께 위드를 제거하며 숲에서 일한다. 식물 하나를 허물어, 자연 속에 또 다른 하나가 되게 하여,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 인간에 의해 무너지는 생태계를 회복시켜 건강한 숲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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