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미 수필가
갠지스강
갠지스의 일출은 분주하다. 시작이 이른 이곳. 다섯 시 반이라는 시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공기 세포 하나하나가 강렬하고 선명하게 살아 숨 쉰다. 해가 점점 떠오르자 출렁이는 황금빛 물결의 잔상이 커진다. 강 한편으로는 보트 위에서 잠을 자는 청년이 보이고 타이어를 끼고 멀리서 헤엄치는 꼬마들도 보인다. 크리켓(cricket)하는 동네 청년들 옆에는 명상하는 사두(인도 종교인)들, 혹은 사두를 사칭하는 사람들과 빨래하러 강가로 나온 여인들이 있다. 갠지스는 이들의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이제 겨우 일곱 시가 되어갈 뿐인데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가워졌고 사람들은 몇 배나 많아졌다. 잠을 자던 보트 위 소년도 햇빛의 방향에 따라 자세를 바꾼다. 꼼지락대며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자리를 잡는다. 뒤척이는 뒷모습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일어날까 말까. 몸을 일으켜 졸린 눈으로 한참을 앉아 다른 이들을 멍하니 지켜보다 결국 다시 쓰러지고 만다.
갠지스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종소리와 함께 “라마신은 죽지 않는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면 귓가를 파고드는 종소리를 따라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곤 한다. 곧이어 뒤따르는 망자와, 그를 옮기는 행렬이 보인다.
주렁주렁 장신구를 매달고 형형색색의 천으로 감싼 시신도 있는가 하면 흰 천에만 감싸져 있는 시신도 있다. 수십 명의 가족이 긴 행렬을 이루며 뒤따르기도 하고, 시신을 운반하는 이 외에는 아무도, 심지어는 주위의 시선조차 뒤따르지 않는 쓸쓸한 뒷모습도 보인다. 쉽게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풍경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는 살짝 뜨거운 눈물이 고인다. 점점 종소리가 멀어짐을 느끼며 온몸의 세포들도 서서히 긴장감을 풀어간다.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존재가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화장터에서는 장작이 끊임없이 타고 있고 매운 연기가 피어오른다. 쓰레기나 종이 타는 냄새와는 확연히 다르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 옆에는 실려 오는 망자와 이 생소한 구경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다소 들뜬 관광객들과는 대조되게 재를 퍼 나르는 사람들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 눈빛이나 손짓에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반복되는 행위에 기계적인 움직임만이 존재할 뿐이다. 쉬는 시간에는 서로 농담을 나눌 정도로 이들에게는 익숙한 생활의 패턴이다.
화려한 색의 천을 두른 시신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높은 카스트의 사람이다. 뒤따라 들어오는 홑겹의 천에 쌓인 시신 역시 그의 신분을 둘러 알려주고 있다. 잠시 후 화장터 계단으로 내려가고 나면 감싸고 있는 것 전부가 벗겨진다. 모든 시신이 흰 천 한 겹만 두른 채 장작더미 사이에 눕혀지고 나니 신분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마지막에 돌아갈 때는 모두 처음 그대로, 아무것도 없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세 시간이 지나면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이제 그 잿더미의 신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강물에 흘려보내지고 나면 서서히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사라진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내 둘째는 팔삭둥이다. 원인 모를 이유로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세상에 태어났다. 진통할 때도 출산할 때도 몸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제어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뱃속에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애타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아이를 세상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확히 이틀 뒤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외조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다른 생명이 자취를 감추는 데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오듯, 햇살이 비추듯, 자연스러운 세상의 법칙에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때가 되어 오고, 때가 되어 떠난다. 무기력하리만치 나약한 존재의 의미에 가슴이 시리기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숨이 멎는 순간에도 강물은 계속해서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간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 혹은 가까운 벗의 이야기라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을 떠나는 자와 그를 보내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함께한 추억이 여운으로 남아 보이지 않는 형태로 한참이나 머물게 된다. 실체 없는 그리움이 삶을 일으키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죽음이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비록 눈을 감았을지라도 그 사람의 온기가 주변인들의 마음을 아직 데워주고 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가 내가 소유한 시간의 끝이라면, 저 계단을 내려가 한 줌의 재가 될 때는 다른 이의 마음속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버린 뒤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가 완전히 잊힐 때가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진짜로 끝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그렇기에 어떠한 여운을 얼마나 오랫동안 남기게 될지가 얼마나 ‘잘’ 살았는가에 대한 답변이 아닐는지.
숙소의 옥상으로 올라 떠오르는 해와 함께 하루를 맞이한다. 강마다 저마다의 풍경이 있다. 이곳에선 한강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센강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더라도 어제와는 다른 흐름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풍경 속 사람들이 각자의 움직임으로 강물에 추억을 흘려보낸다.
시산매 해외(호주)이민문학 캥거루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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