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범법자 《깊이생각해야할 한가위》
제주 속담에 “추석 전이 소분 안 민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는 말이 있다. 소분은 ‘벌초’, 민자는 ‘덤불’, 멩질은 ‘명절’을 뜻한다. 추석 전에 벌초를 안 하면 조상 영혼이 명절 차례상에 덤불을 뒤집어쓰고 온다는 의미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와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얼마 전 개봉한 어느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아들을 헌신적으로 키워 검사로 성공시킨 노년의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에도 얼굴도장만 찍고 돌아서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제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어미랑 놀아주지 않을래. 팁 줄게.” 한평생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한 노모의 고독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벌초는 온전히 부모에 대한 도리나 효라기보다는 자신의 불효를 스스로 용서받기 위한 자식들의 후회와 자위의 행동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약장수>의 상황은 좀 다르다. 지금 당장 누구나 부모에게 어렵지 않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또 그것이 실질적 효라는 점에서 자식들에게 더 뼈아프게 전해진다. 국회에서 민법과 형법을 일부 개정하는 이른바 ‘먹튀방지법’으로 불리는 불효자식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법을 고쳐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녀에게 이미 준 재산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민법에 있는 증여 조항은 ‘배신행위자’에게는 유리하고, 증여자에게는 불리하다며 ‘배은망덕 조장법’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현행 민법 제558조는 자식이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이미 상속한 재산은 철회할 수 없게 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상속을 받자마자 학대받는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해도 패소하는 결정적 이유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효자식방지법은 이를 보완, 확대하는 취지도 포함돼 있다.
불효자식방지법은 존속폭행과 같은 패륜에 대해서도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부모의 끝없는 내리사랑으로 그들의 사회적 범죄를 용서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법무부도 자식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부모를 때리거나 또는 학대할 때 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접수된 노인 학대 10건 중 절반 이상은 아들딸에 의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딸이나 배우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존속 범죄 발생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5년 새 25%가 늘었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부모는 노후대책과 자식부양이라는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거기에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다르게 해석해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 즉 방어기제 작동도 요인으로 지목된다.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면 굶어죽고, 안 주면 맞아죽는다는 소름끼치고 공포스러운 이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싶다. 불효에 대한 처벌은 고려와 조선 때도 있었다. 고려 때는 부모 공양에 소홀하면 2년의 구금형, 부모를 구타하면 목을 베는 참형에 처했다.
불효에 대한 사회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3년 전 ‘노인권익보호법’을 제정해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게 했다. 분가한 근로자가 효도휴가를 신청하면 기업은 반드시 이를 허락해야 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먼 고향의 부모를 대신 방문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최고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불효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불효자식방지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회의적 의견도 적지 않다. 효를 법의 잣대로 재고, 법으로 효를 강요하고 처벌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법안에 ‘부당한 대우’라는 표현 등 학대의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이 법은 결국 부모의 재산을 두고 따질 텐데 가정마다 경제적 수준이나 환경이 달라 일부 가정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형편이 열악한 가정은 100만원이 1억원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데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 다툼을 벌인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튼 자식이 부모에게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법이 나서겠다는 취지인 만큼 우려보다는 기대가 우세한 분위기다. 대한민국의 많은 자식들이 이 법으로 법정에 서든, 부모가 감싸든 실질적 범법자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 죄는 훗날 아무리 벌초를 열심히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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