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라는 말, 본래 ‘싹수’에서 유래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부끄러움을 알고, 겸손히 양보할 줄 아는 마음
요즘 공적 영역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싸가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최근 연예인의 무심한 한 마디, 정치인의 경솔한 언동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장면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정치와 무관한 지역 축제, 특히 어린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원색적인 욕설이 등장하고 객석 사이에서 발언은 여론의 준엄한 심판을 불러왔다. 한순간의 경솔함이 한 사람의 공적 위상을 흔들고, 때로는 정치적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유유서의 질서가 살아 있다. 연장자를 존중하는 마음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어른을 향해 예의를 잃은 언행을 사람들은 금세 “완전, 싸가지네”라며 책망한다. 흥미로운 것은 ‘싸가지’라는 말이 본래 ‘싹수’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본래는 ‘앞으로 잘될 가능성’을 뜻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예절’과 ‘버릇’의 문제로 의미가 옮겨왔다. 결국 ‘싸가지 없다’는 말은 단순히 가능성의 부재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와 품격의 결핍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회적 경구가 되었다.
어떤 이는 ‘싸가지’를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견주어 해석한다. 곧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인의예지가 없다는 것, 사람됨의 뼈대를 잃었다는 뜻이다. 맹자가 말한 네 가지 마음,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은 사람이라면 본래 지니고 태어나는 씨앗 같은 마음이다. 그것이 자라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네 가지 덕목이 되고, 이 덕목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을 완성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부끄러움을 알고, 겸손히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싸가지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이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적폐 청산’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내란범 문제까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때, 우리가 먼저 청산해야 할 적폐는 법규 이전에 사람됨의 부재다. 인격을 가볍게 여기고 예절을 하찮게 여기는 풍토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사회적 병폐다. 자유와 평등이 숨 쉬는 민주국가를 만들려면, 타인의 품격을 조롱하지 않는 문화를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동체의 규범을 부정하고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는 정치적 야심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결핍, 곧 ‘싸가지 없음’의 극단이다. 진정한 적폐 청산은 법률적 처벌만으로는 완결되지 않는다. 인간됨의 회복, 곧 ‘사람다움’을 되살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습관부터 돌아봐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말씨, 어려운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양심, 겸손히 양보할 줄 아는 태도, 그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양심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 다섯 손가락 같은 마음이야말로 교육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자, 공직자가 지녀야 할 자질이다.
추석은 우리가 잃어가는 ‘인의예지’의 덕목을 되살리기에 좋은 계절이다. 명절은 단순히 풍요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인성 교육의 장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조부모를 찾아뵈며 자연스레 공경을 배우고, 격대교육의 품에서 인의예지를 몸으로 익힌다. 풍요로 물든 들녘과 붉게 물든 감홍시, 길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는 자연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과서다. 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인의예지의 씨앗은 싹을 틔운다.
추석을 가리켜 ‘회복과 반전의 시간’이라고 한다.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고, 어수선했던 마음을 다잡는 기회라는 말이다. 회복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반전은 흐트러진 삶을 다시 세운다. 내란이라는 무거운 시대적 화두 앞에서조차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사람됨의 회복이다. 이번 추석만큼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얻기를 바란다. 그것이 곧 싸가지 없는 시대를 넘어서는 길이며, 민주주의의 품격을 되찾는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될 것이다.
박상봉 시인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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