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쉬는’ 명절이 아니라 ‘쇠는’ 명절 -청암 배성근-

이원희 기자

등록 2025-10-06 08:45


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회장



언어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말의 변화 속에는 문화의 방향이, 단어의 쓰임에는 삶의 태도가 녹아 있다. ‘명절을 쇠다’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는 다소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세월이 빚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쇠다’*는 “명절, 생일, 기념일 같은 날을 맞이하여 지내다”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설을 쇠다’, ‘추석을 쇠다’, ‘명절을 쇠다’, ‘생일을 쇠다’, ‘환갑을 쇠다’가 모두 올바른 표현이다. 반면 ‘쉬다’는 몸을 편히 하거나 일시적으로 활동을 멈춘다는 뜻으로, ‘추석 연휴를 쉬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요컨대 추석은 ‘쇠는’ 것이고, 연휴는 ‘쉬는’ 것이다.


‘쇠다’에는 단순한 휴식의 개념이 아니라 ‘지내며 기리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즉 명절은 쉼의 날이 아니라, 마음을 모으는 날이다.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고,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잇는 의식의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명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바로 *‘쇠는 명절’*의 정신이었다.


언젠가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던 한가위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고향은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상 위에 제수를 차려놓고 절을 올리던 그 손길이, 마당에 솔잎을 쓸던 어머니의 손끝이 그리워진다. 예전에는 명절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지금은 그 분주함조차 그립다.

그때 깨달았다. 명절이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사라진 얼굴들을 마음속에 다시 불러내는 날이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연휴’라는 말에 익숙하다. 바쁘게 살아온 몸과 마음을 잠시 놓고 싶어 하며 “명절 잘 쉬세요”라고 인사한다. 하지만 그 말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쇠다’는 ‘쉬다’와 다르게, 단순히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전제한다. 조상과 가족, 자연과 삶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그 속에 깃들어 있다.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쓰기 쉽도록 여러 차례 개정되어 왔다. 그러나 말의 뿌리를 잊지 않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쇠다’라는 단어 하나 속에도 우리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명절을 ‘쇠는’ 문화는 공동체의 정(情)과 감사의 마음을 되살리는 작은 언어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을, 한가위를 맞으며 마음을 다해 인사드린다.

“추석 잘 쇠십시오.”

이 말 한마디 속에는 조상과 이웃, 그리고 자연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다.

언어는 습관이지만, 말의 품격은 그 사람의 인품을 비춘다.

쉬는 명절이 아니라, 마음을 쇠는 명절로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한가위의 참뜻일 것이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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